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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나바테아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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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의 때 묻지 않은 대 자연에 둘러싸여

  몸과 마음이 탁 트이는 해방감을 느껴 보기 위해 낯선 땅을 향해 떠나 보자.

  그래서,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 보자.

  어느새 우린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인간도 원래 자연의 일부가 아니던가.

  우리가 숭고한 자연의 일부가 될 때 삶의 여유와 인생의 길이 보일 것이다.

  생을 살아가는 자세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걷는 것을 멈추지 말고,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인간은 사고하는 것이다. 동물은 움직이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사랑하는 데 있다.

 

   첫 날 아침  로마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제라쉬로 향했다.

  입구 상가에 유리병에 색색의 돌을 갈아서 고운 모래로 만들어 모래로 병속에 낙타모양

  과 사막 등을 아름답게 그린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요르단은 온화한 기후마냥 출발이

  좋았다. 예술작품 같은 기념품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보석 같았다.

 

   상쾌하게 제라쉬의 유적을 향해 서서히 걸어 갔다.

  고대 로마제국으로의 여행은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입구에 로마제국  오현제 중의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아치가  포근한 아침

  햇살과 더불어 과거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로마시대 히포드롬이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오늘도 행사가

   열리는 것 같은 데, 시간이 안 맞고,경기도 좀 조잡할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남쪽 문이 나타났다. 남쪽 문을 지나 Oval 광장이

   나타났다. 그 시절에 온갖 상인들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 팔고, 로마시민들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며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광장은 제라쉬의 번성함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예전엔 기둥 위를 덮는 상판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야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까.  넓은 Oval 광장을 지나서 언덕을 오르자, 저 멀리 제우스

   신전이 언덕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신인 제우스 답게

   높은 언덕에서 인간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오전에 따뜻한 햇살과 언덕에 푸르른 잔디와 곳곳에 노란 유채꽃이 피어 있어

   로마유적만 없다면 우리 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후, 제라쉬의  원형극장을 갔는데, 규모도 엄청나고, 잘 보존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로마의 건축물은 돌들을 흙 다루듯이 정교하게 건축했으며, 지진에도 버틸 수

   있게 그 시대의 건축기술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로마시민들이 공연을 보기위해

   엄청나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언덕에 올라 제라쉬를 보니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시대에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곳곳에 로마시대 기둥들이 여기 저기 세워져 있었다. 푸른 잔디가 넘실대는 언덕길을

   지나 아르테미스 여신전을 가게 되었다. 풍요의 신인 아르테미스 신전은  여신답게

   신전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미를 추구하는 것은 여자나 여신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엄청나게 큰 기둥은 밀어보면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지진을 대비하기 위한

   건축기술일 것이다. 기둥들의 상판엔 아름다운 식물문양이 잘 조각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약간 따가운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아름다운 아르테미스 신전 계단을

   한참을 내려 오자, 거대하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열주 거리인   CARDO 나타났다.

   햇살이 비추어 열주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제라쉬인 아니 고대 로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곳곳엔 여러 가지 건축물이 무너져 내려 아직 복원을 하지

   못한 것 같지만 대 열주로는 정말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엄청난 도시 제라쉬,

   고대 로마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개선문, 원형 극장,아르테미스의 여신전, 대열주로 CARDO 가 제라쉬

   의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성으로 이동했다. 수도 암만은 해발 800 미터 고도에 위치해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암만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원형극장이 저 멀리 있었다.

   언덕 위에는  헤라클레스 신전이 있었는데,모두 무너져 내리고, 일부 기둥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고대 청동기 집터도 있었다.

   고고학 박물관은 암만성 위에 있었는데, 요르단에 있었던 여러 시대의 문물이

   약간 조잡하지만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구절양장처럼 된 길을 돌고 돌아  아르논 계곡을 가게 되었다.

   요르단의 그랜드 캐넌이라 불리는 와디 무집이라는 곳을 갔는데, 오랜 세월에 바위가

   깍이고 깍여 이런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언덕에서 바라본 황량한

   사막과 이런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들은 신이 없이는 삶을 영위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물의 부족을 느낀 요르단에선 최근에 와디 무집에 댐을 만들어 물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자연을 이용한 인간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카락으로 이동하자. 삼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인 카락성으로 갔다.

   십자군 요새였다고 한다.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과 십자군이 맞붙은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둥근 모양의 돌이 있었는데, 들어보니 꽤 무거웠다. 이 돌들을

   성 바깥으로 던져서 적들을 공격했다고 하니, 맞으면 거의 반죽음이었을 것이다.

   맑은 날씨에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이 카락 성의 멋진 풍경을 연출해 주었다. 날씨가

   갈 수록 좋아졌다. 여행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예전에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카락 성의 생활모습을 보니,안타까움이 들었다.

   종교란 대체 무엇 이길래 전쟁까지 할까?  신들도 전쟁을 원할까?

 

 

 

 

 

 

 

 

 

 

     내륙지방이던 요르단이 사막의 일부를 사우디와 바꿔서 획득하게 된  항구 아카바를

   얻게 되었지만, 사우디에 준 사막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석유가 나지 않는

   요르단. 아카바는 요르단과 이스라엘과 이집트 삼 개국이 접해 있는 홍해가 있는 항구

   도시이다. 붉은 산호초가 많아서 홍해라고 불린다고 한다.

   항구에서 바라 본 풍경은 이스라엘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빛나고, 요르단은 그 보다

   못하고, 이집트는 매우 어두웠다. 이 것도 경제력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르단의 진주 아카바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 본 아카바 항구는 정말 아름다웠다. 저 멀리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바라 보이고, 왼 편에 유람선이 정박해 있고, 파란 바다와 파아란 하늘 사이에

   붉은 색의 기운이 수평선에 드리워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음은 와디 럼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예전 '아라비아 로렌스'라는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짚차를 타고 관광하는데,

   인간의 세월로는 셀 수 없는  수 만년을 살아 숨쉬는 붉은 사막에 놀라고 놀라웠다.

   이집트의 하얀 사막과 대비되는 붉은 사막이었다. 흥겨운 아랍음악을 들으며 와디 럼을

   둘러 보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 주었다. 아랍어는 운율이 있어 가장 아름다운

   언어 중에 하나 라고 한다. 예전에 우리 나라 고려 가요나 시조를 생각하면 된다.

   인간의 감정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아름다운 여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와디 럼의 감동이

   한층 더 배가되었다. 단봉 낙타를 타고 가는 사람도 보였다. 넓게 펼쳐진 사막, 풀 한포기

   보이진 않는 황량함. 신을 의지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모든 종교의 모태가 사막에서 시작

   된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수 만 년 전에 바다였다는 와디 럼에서 와디는 계곡이라는 의미,

   럼은 높음이란 의미이다. 즉 높은 계곡이다. 지금은 우기라서 이름 모를 풀 들이 사막 한켠에

   일부 자라고 있었다. 사암으로 된 계곡에 나무의 나이테처럼 세월의 흐름에 풍상에 겪어온

   훈장을 달고 있었다. 계곡 중간에 들어서자, 상형문자가 바위에 조각되어 있었다. 계곡사이엔

   물들이 고여 있어 우기엔 엄청나게 많은 물들이 흐른 흔적을 보여 주었다.

 

    계곡을 나오자 사막엔 낙타와 더불어 생활하는 베두인 카페가 있었고, 여러 가지 장신구와

   따뜻한 차를 팔고 있었다. 일행과 더불어 사막의 경이로운 풍경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며, 베두인 족의 따뜻한 정과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와디 럼의 한 계곡엔 붉은 모래가 오랜 세월 바람에 쌓여 모래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일행 중 일부는 그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나도 모래 언덕을 오르는데 동참했다.

   한 발 한 발 올라갈 때 마다 푹푹 빠지는 모래에 한참을 올라가도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길

   따가운 햇살, 성공으로 향하는 모래 언덕처럼 느껴졌다. 난 반드시 올라야만 한다.

   결국 정상에 올랐다. 고통 후에 느끼는 쾌감만큼 즐거운 것이 있을까?

   모래 언덕을 올라서 계곡 정상에서 와디 럼의 전체 풍경을 조망했다. 평지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아마도 신은 공중에서 인간사를 하나 하나 내려다 보고 계시리라.

   힘들게 올랐지만 와디 럼의 멋진 풍경은 모든 것을 보상해 주었다.

   '도전하는 자만이 승리의 태양을 맞이하리라'라는 나의 좌우명처럼 언덕을 올라 온

   사람은 일행 중 30% 정도다. 어느 조직이든 30% 안에 속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있다. 아름다운 붉은 사막을 올라 와디 럼의 계곡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도

   생을 살아가는 방식 중에 하나가 아닐까?  너무 힘들어 보기만 하고 포기하는 사람,

   올라가지만 너무 힘들어 일부는 중도에 포기하고, 극소수만 정상을 향해 도전해서

   일부만 성공하게 된다. 멋진 와디 럼의 풍경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조망하고 내려오는데,

   모래사막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갈 때와 전혀 다르게 눈 위를 미끄러지듯이 가볍고

   재미있게 내려왔다.  와디럼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모래 언덕 정상에 올라 와디 럼

   정상으로 가서 와디 럼을 조망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행이란 보는 것도 있지만,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 후, 로렌스가 있었다는 지역의 계곡을 구경했는데, 아주 예전에 흑백으로 봤던

   기억만 남아 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로렌스가 목욕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우기 때에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갔을 때는 황량한 붉은 사막과 계곡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와디 럼을 보면서 요르단의 진가를 서서히 확인해 가고 있었다.

 

 

 

 

 

 

 

 

 

 

 

 

 

 

 

 

 

 

 

 

    다음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자 요르단의 보물인 페트라를 보러 갔다.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이자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고대의 경이로움 페트라. 입구에 들어서자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각형의 바위가 놓여 있어 신을 숭배했던 자리가 있었고, 바위를 뚫어 동굴집을 만들어

   살았던 것 같다. 입구를 지나서 사암계곡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계곡 아래부분에는 물이 지나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바테아인들은 아라비아반도와

   시리아의 경계지역과 유프라테스 강에서 홍해를 발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처음엔 유목생활에서 상업활동을 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는데, BC 1세기에 지어진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가 페트라이다. 신비롭고 웅장한 바위 계곡을 시크길이라 부르는데,

   정말 엄숙하고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바닥은 로마시대에 깔았다고 하는 데, 돌로 깔려

   있었다. 마차가 시원스럽게 질주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페트라는 단순한 바위산일

   뿐인데, 계곡을 지나서 거대한 도시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한 참을 들어가자, 코끼리

   같은 바위가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한참을 가도 알 카즈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곡사이의 어두운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밝은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가장 정교하고 웅장한 보물창고인 알 카즈네 신전이 색시처럼 그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웠는지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는데, 정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페트라 입구에  신비롭고 거대하게 아름답게 서 있는 보물창고 바위를 깎아서

   만들어서 오랜 세월 지진에도 버티어 그 모습을 신비롭고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더 프레셔스, 알 카즈네 신전은 건축물로서 보존도 완벽할 뿐더러 정교함도 완벽했다.

   내부는 조그만 방이 있을 분이었다. 바깥에서 본 웅장한 알 카즈네가 거의 본 모습이었다.

   지하에도 방이 있었지만 들어갈 순 없었다. 상단 중앙에는 여신 상과 좌우측엔 여전사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렇게 맑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페트라의 보물인 알 카즈네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신께 감사 드린다.

 

   알 카즈네를 지나서 계속된 암벽 주변에 많은 신전은 그 미모가 한 참은 떨어져 모두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동굴집들이 연이어 있었고, 바위를 통체로 깎아 만든 원형극장도

   있었다. 이집트 왕들의 계곡처럼 붉은 색 사암바위들이 계속된 언덕에는 귀족들의

   무덤들이 연이어 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페트라의 진면목인  알 카즈네를

   다시 보기위해 왔을 때, 해가 서서히 지는 데,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말을 타고 페트라 입구로 돌아 왔다. 요르단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다.

   나바테인 같은 훌륭한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먹고 살아가니 말이다.

   페트라도 알 카즈네가 없었던 들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긴

   어려웠을 것이라 본다.

  

 

 

 

 

 

 

 

 

 

 

 

 

 

 

 

 

 

 

 

 

   우리 나라도 알 카즈네와 같은 보물창고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선조들의

   훌륭한 미와 정신을 물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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