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을 통해 우리는 대자연이 선물한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해 오늘을 본다.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레바논은 지중해를 끼고 있어 물이 많고 비옥하다.
이 지역에선 비가 오는 것을 축복이라 여긴다.
풍부한 것은 대추야자나무, 오렌지, 올리브, 사과나무 등의 과일이다.
우리 나라에 소개된 '예언자'의 작가 칼릴 지브란이 레바논 태생이라고 한다.
시리아에서 독립됐는데, 높은 산이 많고, 비옥한 초승달지역이기도 하다.
호텔 엘리베이터는 객실 키를 삽입해야만 작동하는 구조였다. 도난을 방지하기위해
호텔 객실층으로 진입자체를 원천봉쇄 하는 것이리라.
첫날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시돈 항 십자군성을 구경했다.
이슬람 해적을 막기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 8세기 사도바울이 예전에
로마로 압송되기 전 하루 밤 묵었던 숙소를 교회로 바꾼 사도바울 교회를 갔다.
아주 아담한 돌담교회라고 보면 된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자 예전 캐러밴들이 묵었던 숙소가 나왔는데,
2층으로 된 굉장히 큰 건물이었다. 안 쪽엔 넓은 광장이 있었다. 대상의 숙소로
현재로 치면 오성급 호텔이라 보면 된다. 그 후 점심식사는 옛날 여관을 개조해서
만든 식당인데, 작은 엘리베이터, 넓은 거실, 운치 있는 객실 등 앤틱한 분위기였다.
2층 식당 너머 전망은 지중해가 넓게 펼쳐져 있고, 처음 보았던 십자군 성채가
창 너머에 이슬람 해적과 대항한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서 있었다.
식사 후 티레라는 항구로 이동했다. 페니키아 최대의 항구라고 하는데,
자주색 물감을 수출하던 도시였다고 하고, 한 때는 강력한 해상도시국가였다고 한다.
티레는 두로라고도 부르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철저히 파괴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1950년 초에 발굴된 로마시대 유적으로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유적이 발굴되기 전 중동전쟁으로 인해 해안 근처에서 내륙 쪽으로 난민촌이
대거 형성되었다고 한다.
발굴되자, 가운데 난민촌을 제외하고 내륙과 해안 유적을 발굴했는데, 중간에
휴전선처럼 난민촌이 형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먼저 간 곳은 바닷속 성이라고 하는데, 해안 쪽에 로마시대 기둥과 모자이크 거리,
로마 목욕탕 등이 있었다. 그 옛날 티레라는 도시국가가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말을 안 듣자, 해안을 매립해서 도시를 공격하여 정복한 다음,
만 명의 주민을 처형하고, 삼 만 명을 노예로 팔아 버려서 티레라는
도시 국가를 처절하게 파괴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말발굽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나중에 성을 만들었는데, 매립 전 해안이었기에
바닷속 성이라고 부른다.
역시 로마제국은 위대했다.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사이로 상인들이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리는 듯하다.
바닥에 화려하고 정교한 모자이크 무늬, 고대 대리석 기둥과 열주, 목욕탕과
조개로 자색염료를 만들고, 물저장고 등 수 천년이 흘렀음에도 그 시대의
유적은 말 없이 그 시대의 강력한 문물을 전하고 있었다.
로마시대 자색염료는 조개에서 소량 생산되는 것으로 가격이 아주 비쌌다고 한다.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은 상인들이 선박을 정박하고 목욕하고 물품을 거래하던 장소였으리라
추측된다.
다음은 난민촌을 거슬러 올라 내륙 쪽 유적을 보러 갔다.
먼저 네크로 폴리스라고 하는 공동묘지를 갔다. 네크로 폴리스는 대개 지상에
돌관과 돌 뚜껑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APT형 묘지도 있었다. 그리고 돌관을
중세시대에 재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가 더욱 거세게 몰아쳤지만 로마시대 개선문이 웅장하게 품위를 잃지 않고
우리를 반겨 주었다. 개선문을 지나 도로를 조금 더 가자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
나타났다. 수용인원 2 만 명이라고 하는데, 로마의 경기장보다 더 규모가 컸다.
로마 전차 경기장 유적 중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벤허라는 영화에 나오는 전차 경기를 실제로 본다면 정말 대장관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부서져 일부 관람석이 남아 있지만, 관람석 지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람석 위에서 바라 보고 있으면 저 멀리서 전차가
트랙을 돌고, 로마 황제가 관람하고,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도 베이루트로 이동해서, 비가 오는 가운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보았다. 파란 돔 지붕에 4 개의 미나렛이 아름답게 서 있었다. 베이루트 시청사 옆
중심가에는 시계탑이 서 있었다. 첫 날 레바논은 비가와서 레바논인에게
축복이겠지만, 우리 일행에겐 약간 힘든 여행이 되게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베이루트 심볼 바위를 보러 갔다.
비둘기 바위라고 하는데, 실제로 해안 가에서 보니, 엄청나게 큰 두 개의 섬이었다.
오랜 세월 풍상에 깎이고 깎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는데, 안면도 앞 바다에
장보고 장군을 따라간 할아버지(남편)를 기다린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바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비둘기 바위를 통해 오늘 하루는 비를 피해 관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비블로스라는 곳을 갔는데, 파피루스나 바이블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문화가 발달했고, 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비블로스 유적지는 로마시대 십자군 시대,
그 전 신석기, 철기 시대의 유적이 혼합되어 있는데, 로마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신전과 약간 조잡한 오벨리스크, 물 저장고, 성벽 로마시대 원형극장,
십자군 성채 등.
관광이 끝나자 축복의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기념품 가게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길 건너에 페니키아라는 식당이 비블로스 구경을 빨리 끝내고
식사하라는 듯이 서 있었다.
그 후, 제이타란 도시로 이동했다. 중동 최대 석회석 동굴이라고 하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주변 풍경을 보니 계곡엔 축복의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강물의 양도 많고, 유속도 빠르고, 물은 황토색이었다. 석회석 동굴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무척 신기해 할 것 같다.
다음은 바알벡이라는 곳으로 갔다. 바알은 주인이나 신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벡은 벡카계곡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로마시대 주피터 신전, 바쿠스 신전 등이
있다고 보면 된다. 비블로스 보다 바알벡이 로마시대 유적이 더 잘 남아있는 것
같다. 바알벡은 원기둥의 두께도 엄청나게 컸다. 원기둥의 두께가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컸다. 기둥 위 천정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자머리 장식의 상판이
떨어져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건물 내부에 조각상엔 여러 개의 달걀이 섬세하게 실제처럼 조각되어 있었다.
그 외 색이 바래긴 했지만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었다.
레바논은 스쳐 지나가는 국가였지만, 티레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팔레스타인 난민이 많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관광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레바논 국기에 있는 나무는 참나무 혹은 백향목이라고 하는데, 해발 1500M
이상에서만 자라고 예전에 황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당시에 히람 1세가 이스라엘
다윗 왕에게 성전건설 할 때 사용하라고 백향목을 선물했다고 한다.
어쨌든, 비가 많이 오고, 약간 쌀쌀한 날씨에 시돈항 캐러밴 숙소, 티레항구
로마 전자경기장, 베이루트의 이슬람 모스크, 바알벡의 로마 최대 주피터, 바쿠스
신전이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아듀,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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