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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잃어버린 故土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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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영산인  白頭山을 찾아 이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황망히 일어났다.
    정신이 없는 중에  간단히 준비물을 챙겨서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생애 한 번은 꼭 가 보아야 할  여행지인 백두산인데,
    아침부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나 하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여행은 기존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안착하는 여정이다.
    떠남은 꿈을 꾸게 하고 신선하게 생각하게 하는 인생의 보약이다.
    시간을 이동하는 것은 정말 신비로운 체험이다. 중국은 우리 나라 보다
    한 시간 차이가 나기에 중국에 가면 한 시간이 젊어 진다.
    해외로 시간대를 자주 벗어 날 수록 더욱 오래 살지 않을 까도 생각해본다.
    시간을 이동하는 체험을 하게 되면 신체의 세포도 노화가 정지하고
    신선하게 유지되지 않을까? 바로 神仙이 되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모험을 떠나라!

     첫 도착지인 심양은 그런 대로 깨끗한 공항이었다. 날씨는 무더운 편이지만,
    고구려의 옛 땅을 보러 가게 되는 멋진 날이라서 마음은 편안했다. 살찐 이천수와
    비슷한 현지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먼저 심양에서 환인으로 이동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첫 번째 수도인 졸본성을 향하게 되었다.
    천혜의 요새인 오녀산성은 비류수 건너편에 우뚝 솟은 산에 사각형 성곽으로
    우람하게 버티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졸본성을 오녀산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선조가 다녔던 길을 엄숙한 마음으로 땀을 흘리며 S자 형태의 길로
    많은 계단을 오른후  전망대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은
    고구려의  初期 국가의 틀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고구려인의 웅장한 기상과 고주몽(동명성왕)의 초기 국가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고구려 始祖인 동명성왕은 애정과 기상을 품고 의연하게 나라를 이끌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본 용의 발과 머리 모양의 산들 주위로 강이 흐르고 있는데,
    중국에서  댐을 만들어 고구려인의 많은 무덤이 수장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고구려인의  흔적을 교묘하게 사장시킨 현장에서 비애를 느꼈다.
    그 후 1년 365일 물이 마르지 않는 천지를 보고  졸본성내의 궁궐 터를 보았는데
    아직도 바닥에 주춧돌이 남아서  옛 영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아주 험하게 거대한 바위 틈새에 좁은 계단에,
    급경사로 되어 있어서 졸본성이  엄청난 요새인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황산의 서해 대협곡과 비슷했다.
    내려와서 드넓은 주차장의 편안함과 안락함에서 조상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후의 뜨락의 한적함은 고구려인의 여유일까?
 
 
      둘째 날은 통화에서 이번 여행의 목적인 백두산을 보러 가는 날이다.
    중국에선 장백산이라고 부르는데, 아침에 날씨가 약간 흐려서 백두산 천지를 못 보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백두산 가는 주차장은 넓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버스로 가는 중간에 나무 숲을 지나는 데 나무들이 썩어서 넘어져도 자연 그대로
    놔두어 천연의 상태로 유지한다고 한다.
    중간정도에서 버스에서 내려는데, 폐부를 찌를 듯 시원한 공기는 이 세상의 공기는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옥수수와 소시지를 파는 가게와 식당이 있었다.
    지대가 높아서 주변은 나무보다는 초록의 풀이 많았다. 골프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천지까지 가는 계단이 1,236 개라고 한다. 오르는 계단은 마니산처럼 돌 계단으로
    계속 이어졌다. 가마를 타고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비 오듯이 땀을 흘리며 길을
    올라 중간에 백두산의 한 자락을 사진에 담고, 쉬엄 쉬엄 그러나 꾸준히 올랐다.
    오르는 길 주변의 산등성이엔 듬성듬성 있는 노란 꽃들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바로 건너편이 북한이라고 하는데, 산이 벌거숭이로 된 것이 약간씩  있었다.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나무를 많이 베고 산을 파 헤친 것 같아 애잔한 슬픔을
    느꼈다. 천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느낌은 쇠 소리 같은 파열음이 들리면서
    파아란 물이 연못에 고여서 생생히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천지와 첫 대면은 시원하고 경건하고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천지의 물은 지친 영혼을 씻어 줄 성스러운 정화수였다. 
    중간에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있었는데, 북한 쪽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천지의 시원하고 웅장한 느낌을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엄숙하게 담았다. 한라산의 백록담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쪽빛 천지 색은 하늘의 빛이며, 영혼의 빛이며, 고구려인의 빛이었다.
    하늘을 품은 위대한 호수였다.
    지금은 우리의 위대한 선조인 단군은  모든 영욕을 뒤로 하고 
    눈부신 자태로 하늘로 올라갔다.
    천지라는 연못은 그 옛날의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처연히 빛나는 쪽빛으로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길가에 핀 야생화들을 보면서 조상의 숨결을,
    고구려인의 기상을, 백두산의 고색 창연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백두산이 휴화산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금강 대협곡을 보았다.  
    주변 언덕에는 하얀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서  백두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이 바로 내 나라인데, 지금은 빼앗긴 땅, 중국인의 땅이 되었다.
    언제 다시 우리가 이 땅에서 손목 잡고 만세를 외쳐 볼까?
    백두산의 천지를 선명하게 잘 보고 오게 된 것을 신께 감사 드렸다. 아마도, 이번
    여행 온 사람들이 그 동안 많은 德을 쌓아 祖上神이 우리를 반겨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사람들은 세 번이나 올랐어도 안개로 인해  백두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하산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덕을 많이 쌓으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셋째 날은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이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집안으로 이동했다.
    환도산성의 전망대까지 올라서 옛고구려의 숨결을 느끼고 있는데, 비가 와서
    처연한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어 마음이 착찹 했다. 전망대가 환도산성에서
   
   전쟁 시에 지휘하였던 장소였다. 그 뒤쪽으로 병사들이 국내성에서 평소 살다가
   적이 쳐들어 오면  왕과 귀족과 병사들이 무기와 식량을 환도산성으로
   가지고 와서 철벽 방어를 했다고 한다.  
  

   동방의 금자탑인 장수왕릉을 보았는데,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한다.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인데, 고구려인의 우수한 건축기술과 그 많은 돌들을 어떻게 운반했는지?
   아마도 이 지역을 정벌해서 그 지역 異民族을 동원해서 지은 것이라 생각된다.
   중국에서 역사를 왜곡해서 장수왕릉을  장군으로 격하시켜 장군총으로 부르고 있다.
   일본이 조선시대를 이조시대, 조선백자를 이조백자로, 명성황후를 민비로 격하시켜
   부르듯이.
   대통령각하에서 각하도 일본에서 우리 나라를 낮춰 부르는 용어이다.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친일파(?) 교수들이 교단에서 쓰고 있다.
   장수왕릉 근처에는 왕후의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일본에선 5개였다고 하고,
   우리 나라에선 4개 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아있는데, 모두 도굴된 상태였다.
   고구려의 막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장수왕릉은 장수왕 생전부터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본 광개토대왕비를 보러 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당당함이 살아 있는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 불세출의 영웅
   광개토대왕을  직접 볼 순 없지만 그 아들인 장수왕이 그 아버지의 업적을 기록한
   광개토대왕비를 통해서 그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어깨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불세출의 영웅 광개토대왕!
   중국인들이 광개토대왕비를  실내에선 카메라로 찍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만,
   몰래 카메라에 담았다.  황제만이 연호를 쓸 수 있는데, 永樂이란 연호를
   쓴 위대한 황제 廣開土大帝!
   아마도 지하에 계신 廣開土大帝도 기뻐하실 것이다.
   근처에 廣開土大帝릉을 올라서 보고 고구려의  위대한 황제인 廣開土大帝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상은 그렇게 나라를 세워서 훌륭한 나라를 만들었지만
   그 후손이 어리석어 그 땅을 지키지 못해 당나라에   멸망당하고 아직도
   故土를 회복치 못하고 있어서 머리를 들기가 어려웠다.
   역사엔 가정이 있을 수 없다지만 廣開土大帝가 요절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지금 이 곳을 점유하고 살고 있을 텐데...... . 그러면 우리 나라가
   COREA(고려)가 아니고 高句麗로 알려졌을 것이다.

    국내성은 옛 성터가 남아 있었는데, 성터 안쪽에 중국에서 아파트를 많이 지어
   놓아 교묘하게 고구려 역사를 파괴하고 있었다.
   압록 강변에서 바로 눈 앞에 건너편이 북한 땅이라고 한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쪽에선 보트도 타면서 자유 분방한 삶을 살아가는데,
   북한 쪽에선 먹고 사는데 급급해 삶의 여유와 자유가 없는 것 같아
   울적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조선族은 한국과 중국이 축구를 한다면 중국을 응원한다고 한다.
   세대가 내려갈 수 록 민족의식이 약해지는 것 같다. 충격적인 일이다.
   어떤 이는 조선족은 한국인이 아니고 중국인인데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인일 따름이다"
   라고 말한다. 그 만큼 異質化가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다.

    넷째 날은 단동으로 이동을 했다. 단동은 압록 강변에 있는 도시로 건너편에
   북한이 가깝게 보였다. 북한의 빈약하고 가난한 풍경과 단동의 발전되고 휘황 찬란한
 
   도시가 압록강 하나 차이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가슴에서 소리없는 슬픔의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중간에 이성계가 회군하여 조선을 세운 위화도가 있었다.
   압록 강변에는 斷橋가 있었다. 그 옆에는 새로운 철교가 이어져 있어 하루에
   두 세 차례 열차가 운행해서 북한 쪽과 중국 쪽의 상인들이 왕래한다고 한다.
   단동에 있는 고구려의 박작城은 중국에서 조작하여 호산장성으로
   왜곡 시키고 있었다. 즉 만리장성으로 교묘히 만들어서 동북공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만리장성은 漢 나라때 흉노족과 동이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동쪽으로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끝 자락인데, 어떻게 압록강에
   만리장성이 있겠는가, 안시성의 영웅 양만춘은 어떻게 되는가? 양만춘과
   연개소문 을지문덕 장군이 지하에서 웃을 것이다.
   관광을 하면서  우리 나라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가져간다'는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중국인의 역사왜곡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속될 것 같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통일을 빨리해서 고구려 이래로
   빼앗긴 국토를  회복을 해서 우리 민족의 역사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을
   힘차고 자랑스럽게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수한 우리 민족이 세운 역사유적이 중국인들에 의해 점유되고, 그 수익을
   중국인들이 가져가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  우리의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 천지 등 많은 것들이 중국인들에 의해 관리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많은 한국관광객 및 외국관광객들이 보러 와서 돈을 중국인들에게 뿌리고 간다.
   지하에 계신 廣開土大帝께서 어리석은 후손들을 얼마나 질책하실까?

 
   만리장성이 흉노 족과 동이 족 등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고, 만리장성의 가장
   동쪽이 산해관인데,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역사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고구려시대 박작성을 호산장성으로 바꾸고, 단동에 있는 만리장성으로
   둔갑시켜서 영토을 합리화 시키고 있다. 고구려마저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신라의 찬란한(?) 통일에 의해서 우리의 국토는 대동강에서 원산 만까지로 대폭
   축소 된 이후로  세종대왕 때  최윤덕(4군:압록강)  김종서(6진: 두만강)에 의해
   그나마 압록강 두만강까지 회복을 하였다.
   신라에 의해 통일된 이후로 발해와 고려가 잠깐 회복을 하였으나,
   지금까지 조상의 땅이 잃어 버린 땅으로 되어 버렸다.
   친일사학자의 거두인 이병도에 의해서 우리 역사의 영토는 한반도 안으로 축소되고
   역사는 말살 되고, 은폐되고, 조작되었다. 단군은 역사가 아닌 神話로 전락되었다.
   古朝鮮과 高句麗와 渤海와 高麗가 차지한 땅은 영원히 차지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대학 때는 고시과목에 한국사라는 과목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입학시험에도 국사라는 과목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자기 나라 역사에 관심이 없다가, 냄비와 같은 국민성에
   의해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하고, 중국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 세운 나라로 빼앗아 가자, 잠깐 흥분하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냄비 민족이 바로 韓민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옛날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기마민족의 雄渾한 기상은 어디가고,
   廣開土大帝 같은 위대한 황제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가 분명히 크게 성공하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확신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의 옛 땅을 회복하는 方案을 생각해보니,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政治的으로 해결 하는 방안인데, 현실성은 없어 보이고,
  두 번째는 武力으로 해결하는 방안인데, 이 역시 중국은 核을 보유하고 있어서
  어려울 듯하고, 세 번째가  經濟的 방안인데,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만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기업이 진출하고 땅을 확보해서 나중에 중국이 분열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돈을 주고 매입하는 방안이다. 옛적에 제정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산
  미국처럼...... .   돈이면 天下도 산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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