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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吳나라, 宋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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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바람이 온 몸을 감싸는 가을,
 
  하늘과 대지가 파랗게 누렇게 결실을 맺어 가는 가을,

  기분 좋은 서늘함과 풍요로움이 손 끝에 전해지니 절로 마음이 뿌듯해지는 가을,

  휴식의 달콤함과 새로운 문화와 풍경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세상에서

  신선한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서 오늘도 난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한
 
  여행자처럼 또 다시 떠난다.

    상해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면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상하이

  방문인데, 동방명주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소리없이 서 있었다.

  서울의 10배가 넘는 땅에 중국의 발전상을 과감하게 드러낸 상하이,

  우리 나라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같이한 상하이.

  동방명주 1층에 포목 가게와 청나라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밀랍으로

  정교하게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실제 사람처럼 느껴 졌다. 그 후, 상해 최대

  번화가인 남경로를 가 보았는데, 명동처럼 엄청난 사람의 물결과 휘황 찬란한

  네온사인 등이 비슷했다. 다만, 중간에 놀이공원에서와 같은 조그만 기차가

  길 중간을 쉴 사이 없이 왔다 갔다 했다. 황포 강이 흐르는 외탄으로 자리를

  옮겨 상해의 야경을 둘러 보았다. 역시 야경은 홍콩의 백만불 야경을 따라 갈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외탄거리에서 관광을 하고 있었고,

  짝퉁을 파는 잡상인들이 호객행위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이제 목욕을 끝내고 새색시처럼 단장을 하려는 상해를 떠나, 소주로 향했다.

  소주는 첫 방문이라서 약간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다음 날 날씨는 약간 흐린 날씨
 
  였는데, 그다지 무덥지 않아서 관광하기엔 그런 대로 괜찮을 듯 했다. 먼저, 간 곳은

  한산사라고 하는데, 한산과 습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한산은 추운 날 주워

  왔다고 해서, 습득은  주워 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이름은 한산

  스님의 이름을 따서 한산사라고 한다. 서기 502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굉장히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주변엔 개천이 흐르고 있어 예전에 배로 이동하는 운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한산사 위로 올라서 보니, 지붕엔 수 많은 동전이 던져져

  있었다. 동전을 지붕 위에 던지면서 福을 기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중국인들은

  복을 기원하는 데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한산사 중앙엔 호수가 예쁘게 있고,

  금붕어같은 고기들이 유유자적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수로를 중심으로 잘 만들어 놓은 사찰이었다. 개천에 아치교가 아름답게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약간 흐린 날씨라서 神仙의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간간이 내리는 비를 피해 중국 4대 정원의 하나인 유원으로 가게 되었다.

  예전엔 졸정원을 관광객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유원으로 오는 것 같다.

  청나라 시대 관료가 아버지를 위해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만드는 동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완공을 못 보았다고 한다. 관료의 효심를 볼 수 있는 정원인데,

  자연을 집안 정원에 모두 옮겨 놓은 것이라 보면 된다. 산과 물과 새와 호수와 정자

  가 있는데, 주변에 복도가 길게 미로처럼 이어져 있어서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으면서

  유유자적 자연을 볼 수 있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볼 수 있는 정원.


   어떤 방에선 옛날 의상을 입은 여자가 피리같은 것을 부는데  옛 가락을 멋드러지게

   연주하였다. 유원 중앙 호수 가에 있는 하얀 바위는 조각가들이 조각을 해서 물 속에

   오랫동안 담궈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자연과 인공을 합성한

   것이라고 보면된다. 유원은 청나라 시대 조경과 자연을 사랑한 관료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중국의 피사탑이라는 불리는 호구탑을 가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월동주와
  
  와신상담의 나라 吳나라로 입성하게 되었다.  오나라의 수도가 지금 소주라고

  보면 된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는 견훤지간이라서 오월동주라고 한다.

  오나라 왕 합려가 죽은 후 묘를 만들었는데 삼일 후에 하얀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해서

  호구라고 불리는 데 나중에 그 위에 탑을 쌓았는데, 지금은 약 15도 정도 기울였다고

  해서 중국의 피사탑이라고도 불린다. 합려의 무덤을 발굴하려 하자, 탑이 기울어서

  발굴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오나라 합려가 월나라 구천에게 패하여

  죽게 되자  그 아들 부차가 와신상담하여 복수를 하게 된다. 이에 월나라 구천은 부차에게

  중국 최고의 미녀인 서시를 보내어 부차가 서시에 빠져 있는 사이에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합려는 아주 영특한 왕이었다. 춘추시대 막강한 강국 초나라를 제압하고 세력을 남방에서
 
  중원으로 넓혔고, 초나라 신하인 오자서를 재상으로 삼고, 손자병법의 著者인 손무에게

  병권을 주어서 춘추오패 중의 하나가 되었다. 호구탑을 가는 중간 중간에 오나라 깃발과

  천들이 펄럭이면서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중간에  바위를  칼로 두부 자르듯이

  반듯하게 둘로 잘려져 있는 시검석이 있었다. 위쪽 광장엔 오나라 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하나의 축제였다. 그 옆엔 千人石이라고 하는 크고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오나라 왕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인부 천명을 모두 죽여서 천명의


  피가 흘러서 아직도 그 바위가 울긋불긋하다고 한다. 그래서 천인석이라고 불리는데,

  합려의 무덤은 연못이라고 보면 된다. 신라 문무왕릉처럼 물 속에 있다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한적한 남방의 조그만 나라였던 나라였던 오나라 강국 초나라를 제압하고

  중원을 제패했으나,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고, 중국 최고의 미녀인 서시에

  의해 결국 월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오나라의 방문은 역사공부에도 뜻 깊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와신상담  손자병법 서시, 합려, 부차, 구천 오월동주 등

  오나라~♪  오나라~~♬

   비가 조금씩 오는 가운데 항주로 이동하여 동방문화원을 가게 되었다.

  동방문화원은 중국각지의 유적을 한데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 보면된다.

  기차를 타고 한바퀴 둘러보고 육화탑을 보러 갔다. 예전에 왔을 때 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저녁에  남송의 수도인 항주에서  송성가무쇼를 보게 되었다.

  공연에 앞서 주변에 송나라 시대를 재현 놓은 것을 과거로의 여행처럼 재미있게

  구경했다. 송나라군사가 훈련받는 곳 송나라 시대의 거리, 송나라 결혼식 행렬 등.

  송나라 장터와 천녀유혼의 영화에서 나오는 의상을 입은 선비가 지나가는 모습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광고 문구도 너무 멋졌다.

  "그대가 나에게 하루를 준다면, 송나라는 그대에게 千年을 주겠다."

 

  당나라 이후의 나라가 송나라인데 문치주의의 북송이 거란족인 요나라에 쫓겨

  남송으로 이동해서 항주에 도읍을 잡고 나라를 이어 가나,

  여진족의 금나라에 멸망하기 까지 과정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연출한 것인데,

  이번 여행의 최고의 백미가 宋城가무쇼가 아닌가 생각된다.

  송나라는 군사력은 미약했으나, 문화는 최고조로 발달했다.

  남송에서 불세출의 영웅인 악비로 인해 금나라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악비는 암살당하고 결국 송도 멸망한다.

 
   먼저 조선 시대 명장인 남이장군이 북정가를 살펴 보자.

               백두산의 숱한 돌  칼을 갈아 다하고

               두만강 푸른 물  말을 먹여 잦아졌네.

               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할진대

               뒷날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을까

   얼마나 멋진 시인가!  남이 장군의 웅장한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세 번째 구에서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에서 奸臣 유자광이

  男兒二十未得國 으로 평을 득으로 조작해서 죽이게 되죠. 우리 나라 훌륭한 인재를

  잃은 것처럼, 남송의 악비도 남송의 유자광(?)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게 되고,

  남송 역시  금나라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징기스칸의 원나라가

  중원을 차지하게 되죠.

   송성가무쇼는 아주 훌륭했고, 마지막에 아리랑이 나왔는데, 태국의 알카자쇼에서


   아리랑보다는 감흥이 많이 떨어졌다. 과거 오나라의 수도인 소주와  송나라의 수도인

   항주. 두 개의 나라를 단 하루 만에 감상해서 그런지 조금 피곤했다.^^;

    다음 날 서시와 소동파와 관련있는 서호를 구경갔다.  예전에 왔을 때처럼 소동파는

   아직도 하늘을 쳐다보며 시상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소동파가 항주에 관리로

   있을 때 서호 중간에 길을 내어서 (일종의 지름길) 제방을 쌓았다. 백성들이 많은

   길을 돌아가는 것을 해결해 주었다. 그 당시에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를 요리해서

   먹인 것이 바로 동파육 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아름답던 西湖의 잔잔한 수면을

   보면서 여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배에서 하선하자 호수 가에서 수 많은 연꽃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저녁에 상해 옛 거리를 보러 갔는데 그야말로 예전 청나라

   시대의 화려한 건물에 불빛을 밝히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주변에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있어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후 상해 서커스를 보고

   황포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동방명주 등 야경을 관광했다.

  외탄에서 본 것 보다 배에서 직접 보니 조금 나은 것 같다.

  동방명주 외에도 여러 가지 건물들이 색색의 불을 밝혀 중국의 발전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香港이 백만 불 야경이라고 하면, 상해의 야경은

  삼 십만 불 야경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상해 하루 밤 전기세가 3억 정도 든다고

  하니, 홍콩의 백만 불 야경은 따라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전기세는 많이 들고 ^^;

    마지막 날 화창하고 맑은 날 아침이 우리를 깨웠다. 처음 간 곳은 상해임시정부청사
 
   였다. 김구 선생 집무실과 주방, 회의실, 전시실 등이 있었는데,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삼일 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脈이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우리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신한 많은 독립투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그 후 유럽스타일의 신천지라는 거리를 보았다. 노천 바와 카페가 있었고, 외국인들도

   상당수 있어서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태가촌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태가촌은 식사도 하면서 소수민족인 태족의 전통공연을 볼 수 있는데,

   음률도 흥겹고 의상도 멋지게 입고 나와서 춤을 추는데 상해오면 꼭 가 보아야 할

   식당이라고 본다.

    식사 후, 일본 시라카와 대장을 폭사시킨 매헌 윤봉길 의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홍구공원으로 갔다. 지금은 중국의 위대한 작가 노신의 이름을 따서 노신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아Q정전이 노신의 대표작이다. 어쨌든 예전에 홍구공원에서 일본

   대장을 폭탄투하하여 우리 나라의 독립을 앞 당긴, 25세의  젊은 나이에

   구국살신한 훌륭한 의사이다. 그런 훌륭한 의사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신의 명언 중에서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한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

   첫 번째 말은 개척자 혹은 선각자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 말은 현실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해 낸 말이라고 본다.

 

   끝으로, 세 번째 방문인 상해와, 두 번째 방문인 항주와, 첫 번째 방문인

   소주의 트리오 도시를 보았지만, 과거 속에 존재하는 오나라의 수도 소주와

   송나라의 수도 항주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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