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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영원한 로마제국과 꿈의 섬 CAP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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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얼이 서린,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사랑했던

  樂園같은 이탈리아(이태리)를 찾아 떠나는 필자의 마음은 가을날 새털보다도 더 가벼웠다.

  로마제국의 유일한 천재이자 유럽을 만든 카이사르(시이저)가 살던 이탈리아,

  시오노 나나미가 사랑하는 이탈리아,

  장화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로마인들의 후예가 살아가고 있는 이탈리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인다.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 러셀 크로우의 '글래디에이터',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오는

  피렌체의 두오모 등 많은 영화와 소설이 영원한 제국 로마를 소재로 하고 있다.


   메슬로우 욕구계층이론에서 가장 최상의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욕구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필자의 삶은 한 단계 높아질 것이고,삶의 영역 또한 넓어질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밤길을 불빛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이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이 부족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민족만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우리 민족도 고조선과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을

  가슴에 품고 나간다면 세계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당파싸움)과 신라(唐에 굴욕적인 사대외교)같은 사고 방식으로 

  살다가는 영원히 이류도 아니고, 삼류국가, 삼류민족, 하류국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먼저, 대한민국에서 영원한 도시 로마로 가는 긴 비행시간에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과 

  생활상을 그린 방화 '원스 어폰 어 타임'과 예쁜 니콜 키드만이 나오는 '황금 나침반'을 

  보았다. 로마 도착 후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밀라노로 갔다. 고대 로마제국의 땅에서

  여장을 풀고 고대로의 여행을 준비했다.

   이탈리아에서 첫 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활기 차게 밀라노의 아침을 열었다.

  밀라노는 패션의 중심지이며, 세계 유행의 발신지이다.

  처음에 간 곳은 스포르체스코 성인데  높은 성 중앙탑 부근에 새가 유유히 고공비행을 하면서

  우리를 고대로 인도했다. 성 주변 해자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잔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초록의 바다였다. 성은 곳곳에 사각형의 구멍이

  나 있는데 예전에 건물을 건축할 때 지지대로 나무를 사용했던 흔적이라고 한다.

  스포르차家의 문장은 독수리와 뱀이 사람을 잡아 먹는 그림인데, 아직까지 살아남아

  현재 밀라노의 상징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 밖에는 실과 바늘의 조형물이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었다. 빨강,노랑,초록 색깔의 실을 잘 형상화해서 패션의 도시를 보여 주었다.

  성 내부는 귀족과 군인들이 사용했고, 평민들은 성 밖에 살았다고 한다.

  스포르체스코 성은 육각형 모양으로 적의 공격을 잘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다음으로 라 스칼라 극장을 갔는데, 맞은 편에 이탈리아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이

  오페라 극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극장에서 조수미가 노래했고, 정명훈이 지휘했었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폐허가 된 것을 설계도가 남아 있어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선 승전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선 패전국으로서 영욕을 누렸다.

  한 때는 세계의 사분의 일을 차지한 대제국이었는데.......

 

 

  그 후 갈레리아라는 아케이드를 보았는데 네 개의 건물을 유리도 된 지붕으로 연결시켜

   돔을 만들어서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그 건물 중 하나는 7성급 호텔이 하나 있는데,

  우리 나라 호텔 사장 한 명이 숙박했다고 한다. 갈레리아입구는 개선문처럼 거대한 문이 

  하나 있었고, 건물 중심지 바닥은 로마의 시조라고 하는 로물루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그림과 피렌체 상징인 백합과 십자가, 소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소의 생식기에 발을 대고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소의 중심부분은 아예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네개 건물 각 중앙엔 4대륙(유럽,아프리카,

  소아시아,신대륙)을 상징하는 프로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갈레리아라는 아케이드는

  주세페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새들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 중앙부분에

  그물을 쳐 두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두오모 광장에서 시원한 젤라또를 먹으면서

  한 낮의 밀라노를 만끽하고 있었다. 두오모는 대성당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주교이상이

  미사를 보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주교-> 대주교 → 추기경 → 교황) 각 도시마다 두오모가

  있다고 보면 된다. 밀라노 두오모는 매우 섬세하면서 화려하고, 대리석을 사용해서 만들었으며,

  500 년 간 공사가 되었는데, 지금도 보수 공사중이다. 내부에서는 대리석의 시원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밀라노를 뒤로 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되었던 낭만적인 도시 베로나

  로 이동했다. 풍요로운 숲과 아디제 강에 둘러싸인 시내에는 중세시대의 성과 거리가 그대로

  보존된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였다. 야외 오페라를 공연하는 아레나 원형경기장을 보았는데,

  외부에서만 보았는데도 그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아레나를 지나 모든 연인들의 성지인

  줄리에타(줄리엣)의 집을 방문했는데, 입구 양 벽면에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의 글을 써

  놓아서 팔레트 판이나, 모자이크화처럼 총천연색으로 된 합작품이었다.

  2층에 발코니에서 여자가 나와서 줄리에타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1층에는 줄리에타

 

  청동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유방 쪽은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줄리에타 청동상을

   보니, 인물은 평범했던 것 같고, 고집이 있게 보였다.

   영화나 소설에선 너무 美化되고, 미녀가 배우로 나와서 현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

   서안(장안)의 양귀비상과 많은 대조를 이루었다. 미녀와 평범한 여자와의 대비랄까!

   단테광장이라고도 하는 시뇨리 광장에서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베로나의 애틋한 사랑을

   느꼈다. 베로나에서 베네치아(베니스)로 버스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에는 다른 나라에 있는 네 가지가 없다고 한다.

   24시 편의점, 피자 헛, KFC, 스타벅스가 없는데,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라고 보면된다.

   달고 쌉사름한 에스프레소(익스프레스)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

   우리 나라 커피숍에 가면 아주 조그마한 컵에 아주 조금 커피가 나오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인이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커피이다. 

    다음 날 물의 공화국인 베네치아로 갔다. 배를 타고 가는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란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물 만난 고기처럼 너무나 즐거웠다.

  우리 나라 개성상인이 유명하다고 하듯 이 곳에선 베네치아 상인을 알아주었다.

  나폴레옹에게 베네치아공화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지중해의 경제를 제패한 경제강대국이었다.

  아드리아해의 석호에 도시를 건설한 베네치아인들의 위대함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

  그 당시 인구가 9만 명이었다. 9만명으로 전 세계(그 당시) 상권을 제패한 위대한 베네치아인에게

  다시 한 번 고객 숙여 경의를 표한다. 

  놀라지 마시라! 

  그 당시에 카르타고와 스페인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 등 소아시아와 로마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독일, 영국(브리타니아),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완전히 야만족이었다.

  유럽을 창조한 사람이 바로 로마의 유일한 천재 카이사르이다. 그 당시 갈리아인(켈트족-프랑스인)

  게르만족(독일인)은 거의 야만족(바바리언)이라고 보면 된다.

  백제 왕인박사가 야만족인 왜구들에게 문물을 전해주어서 지금의 일본이 있듯이,

  카이사르가 갈리아인들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도 알려 주고 많이 개화시켜 주었다.

  만약 로마의 카이사르가 없었더라면 유럽의 바바리언들은 지금도 이탈리아(로마)의 속국으로 

  영원히 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니발로 대표되는 카르타고(현재 튀니지)의 식민지 에스파니아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카르타고는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에스파니아도 로마의 소유가 된다. 이때 카르타고가

  불타는 모습에서 로마의 멸망을 본 스키피오의 눈물이 유명하다.
 

   어쨌든 로마제국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갈 무렵(안타까운 일이지만), 주면 야만족의 침입으로

  베네치아 시민들은 살 곳을 찾아 바다로 도망친다. 그 바다에 위대한 베네치아를 천 년 동안

  만들어 낸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는 석호에!  118개의 섬과 200여 개의 운하, 그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중에 뭇솔리니에 의해  육지와 연결되어 자유의 다리가 

  만들어진다. 베네치아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잘 산다고 보면 틀림없다.

  베네치아의 중심지는 산마르코 광장이다. 베네치아를 그 당시 세계강국으로 만들어 놓은

  마르코 폴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ㄷ 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런 건물을

  물 위에 지었다고 하는데, 대단한 베네치아인들이다. 중국에선 흙을 이용한 자기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면, 베네치아에선 유리세공 기술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삼 천 도에서 열을

  가해 유리제품을 만들어 여러 가지 장식을 새겨 넣는데 일반 유리에 비해 강도가 세서

  잘 부서지지 않는다. 광장의 중심에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는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마가의 시체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 방언에 '혼저옵소에' 라는 말이 '빨리 오세요'라는 의미처럼,

  '베네치아'라는 의미도 '계속해서 오라'는 의미라고 한다.

  상인의 나라 베네치아 이름도 참 잘 지은 것 같다. 계속해서 와야 장사가 잘 되어 부자될 테니까. 

  매혹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소설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가 되었던 곳

  예술적 향기가 묻어 나는 물의 도시.

  나폴레옹이 멸망시키러 왔을 때 엄청난 재력을 보고 놀라 뒤집어 진 곳

  바로 그 곳이 베네치아.

  중심지에서 보면 두칼레 궁전이 있는데 역대 총독의 관저로 쓰였다고 한다. 

  총독의 상징이 행운의 네잎클로버 문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 난간에 네잎 클로버가

  장식되어 있었다. 귀족들도 네잎클로버 문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두칼레 궁전과 옆의 감옥을 잇고 있는 '탄식의 다리'가 보였다. 한 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 나올 수 없는 감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면서 죄수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문호의 작품인 '몽테크리스도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가 

   죽어서만 나올 수 있는 공포의 이프성채에서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하듯이(물론 소설이지만)

   현실에선 베네치아의 카사노바가 이 감옥을 탈옥한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한다.

  카사노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카사노바이고,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카사노바에 대해 살펴보면 1725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는데 부모 모두 배우 출신이었다고 한다.

  모든 여자는 카사노바가 3분 안에 요리한다고 한다. 그 뛰어난 언변 놀라울 따름입니다.

  5형제중에 하나인 카사노바는 지구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부모가 베네치아 세미나리오에 입학시켰는데 퇴학당한다.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 출감해서

   로마로가서 추기경의 비서로 일한다. 그러나,형사사건에 연루되어 해고된다.

   그 후 베네치아 육군에 들어가나 군복을 벗는다. 20살 때 베네치아 산 사무엘레 극장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도 한다. 이때 원로원의원 브라가딘의 양자가 된다. 드디어 25살 때부터 

  여러 나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파리, 드레스덴, 프라하, 빈에 체류한 후 베네치아에

  돌아온 카사노바는 32 살 때 프리메이슨의 멤버, 배교자, 사기꾼의 혐의로 체포된다.

  프리메이슨은 대단히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되었던 시절이다. 우리 나라로 설명하자면

  6.25 시절 공산주의자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다. 15개월 후 탈옥에 

  성공한 후 제일 먼저 파리로 간다. 여자, 도박 등에 정열적이었다. 런던에선 조지2세와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대왕과 쌍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선 예카테리나 2세와 친분을 맺는다.

  이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카사노바시절이다. 그 후 47살 때 기가 빠져서 고국으로 돌아온다.

  탈옥했기에 속국 영사에게 부탁해 베네치아에 힘을 써서 죄를 사면받는다. 단 조건이 붇는다.

  첩보활동에 종사한다는 조건으로. 8년 동안 스파이로  지내다. 귀족에게 고소당하자 국외로

  도주한다. 3년 뒤 보헤미아의 백작의 성에서 숨을 거둔다. 그 당시 카사노바의 직업은

  발트슈타인 백작의 비서겸 도서실 담당이었다. 그 곳에서 유명한 회상록을 썼다고 한다.

  에드몽 단테스, 카사노바, 쇼 생크 탈출 - 공통점이 탈옥인데, 여행도 역시 지루한 일상의

  탈출이 아닐까 생각된다!

   산 마르코 광장에 시계탑은 500년 동안 시간을 종을 쳐서 알려 주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구경하는 중간에 종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곤돌라로 베네치아 골목의 수로 길을 유람하는데 배가 검은 색으로 칠해진 길다란 나룻배라고

  보면된다.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을 거슬러 베네치아 시내 요소 요소를 관광했다. 미로처럼

 

   되어 있었고, 생기 넘치게 살아가는 베네치아인들이 느껴졌다.

   그 후 역 S자 형태의 대운하를 보기 위해 베니스 택시를 탔다. 곤돌라에 비해 쾌속정이라

   보면된다. 베네치아 택시를 타고 안성기가 맥스커피 선전하던 건물계단과 007 영화에서

   보트 추격전을 벌이던 곳 등을 보면서, 매혹적인 베네치아라는 도시를 피부로 느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동부 지중해 영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뒤로 하고, 피사로 이동해서 피사의 사탑을 구경했는데,

   피사의 탑을 건축했던 지반자체가 약했던 것 같다. 성당은 그대로 인데, 탑은 지반이

   많이 내려 앉아 있는 데다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피사라는 도시는 흑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말로만 들었던 피사의 사탑을 실제로 보았다는 기쁨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예전엔 피사가 도시국가 이면서 항구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해안선이 이동하여 내륙으로 바뀌고 강력한 도시국가가 밀라노와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등과

   경쟁하던 그 시절은 어디 가고 지금은 아주 소도시로 전락하여 피사의 사탑하나로 살아가는(?)

   변변찮은 도시로 전락했다. 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간도 피사처럼 될 것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간만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
 

    다음 날, 꽃의 도시, 르네상스의 중심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두오모로 유명한 피렌체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두오모는 르네상스 양식의 상징적인 성당이다. 웅장한 돔과 화려한 색의 조화가 과거 찬란했던

   영화를 보여준다. 건너 편 산 조반니 세례당 문에는 천국의 문이 황금색으로 부조되어 있었다.

   참고로 필자는 종교가 천주교는 아니고, 기독교를 믿지만 성당이나, 성화,성물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고 단지 인류의 문화재 혹은 역사로서만 볼 뿐이다. 우리 나라나, 중국에 절도 마찬가지다.

 


   거리에 마부와 마차의 말이 손님을 기다리며 피렌체의 한 낮을 졸고 있었다.

   다음은 신곡을 쓴 단테의 생가를 방문했다. 바닥의 돌에는 단테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단테는 중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인인데, 귀족이었고, 꽤 잘 살았던 것 같다.

   그 후 베키오 궁전(시청사로 사용)과 시뇨리아 광장을 보았는데 시뇨리아는 지배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에는 넵튠분수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복제품) 및 헤라클레스 조각상들이

   있었다.
 

   토스카나 최고의 자본가인 데 메디치家에서 예술가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大 예술가가 등장하고,

   르네상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의 메세나로 보면 된다.

    한 낮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고,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과 언덕 중앙에 있는 다비드상(복제품)을 보았다. 피렌체에서

   그레베의 포도주 공장으로 가는 길에 주변 토스카나 지방 산야는 거의 우리 나라 전원풍경과

   비슷해서 우리 나라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레베의 베라짜노 포도주 농장을 견학했는데, 언덕 중앙에 위치한 성에서 주변 포도농장을

   관리하는데 보성 녹차 밭처럼 신선한 녹색의 바다였다. 성안은 바깥의 강한 햇빛과는 달리

   시원했다. 포도주를 만드는 오크 통도 큰 것부터 시작해서 조그마한 것까지 여러 가지였다.

   비싸다고 하는 아이스와인은 못을 박아 놓은 막대에 포도를 걸어서 나중에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도주는 약간 쓰다고 보면 아이스와인은 대개 달다.

   포도주를 여러 가지 시음하고, 베라짜노 농장을 나오는데 주인은 조각같은 얼굴에 친절하고,

   탐 크루즈와 비슷하게 참 잘 생긴 사람이었다. 최초 주인인 베라짜노는 미국의 뉴욕의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로 장시간 버스로 이동해서 여독을 풀었다.
 

    다음 날 폼페이로 갔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인해서 화산재에 묻혀 사라져 버린 도시이다.

   화산은 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 섬과 폼페이 두 곳이 있다고 보면 되고,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에서 유일하게 석유가 난다. 마피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 옆 샤르데나 섬은 목동들이

   유괴로 유명한데, 유괴해서 대부분 죽인다고 한다. 샤르데나 섬은 되도록  안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폼페이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져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발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 곳에 아폴로 태양신의

   신전을 만들어 놓았다. 거리는 돌로 되어 있었는데 마차자국이 나 있었다. 대중목욕탕도 

   있었는데 BC 70년대 목욕탕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에 놀랐다. 터키의 에페소와 비슷하지만

   역시 로마는 대단한 것 같다. 나중에 퇴폐 풍조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납으로 만든

   수도관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역사에서 2000 여 년 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온전히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이다. 발해도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인해서 

   갑자기 멸망했다는 설이 있다.요즘엔 로버트해리슨의 '폼페이'도 소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로마제국은 길과 목욕탕이 특히 유명하다.

    다음은 기차를 타고 소렌토역에서 내려 캄파탸 지방의 소렌토로 갔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유명한 소렌토

   ~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나는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 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

     소렌토 중심에는 파스텔톤의 은은한 노란색 건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소렌토는 절벽 위에 있는 도시다. 조용하고 바람은 잔잔하고, 지중해의

     햇살은 뜨겁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시원한 풍광이었다.

     파란 바다에 맑은 하늘, 새들은 유유히 비행하고 유람선은 한가롭게 여기저기

     떠 있고, 깎아지른 절벽은 웅장하고, 해안가 주변은 수영하는 사람과 보트로 

     붐비고 정말 시원하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가파른 골목과 계단을 통해 부두로 내려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나폴리를 두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폴리를 보고 죽자" 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 후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 그 유명한 꿈의 섬인 카프리섬에 갔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황제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소유하던 이스키아섬을 카프리섬과 바꿀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카프리섬은 최고의 휴양지이다. 카프리섬 입구에 조그마한 해수욕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나카프리라는 정상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절벽의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 갔다.  버스에서 도착 후 계단을 올라 리프트를 타고 15분 정도

     정상으로 올라 갔다. 리프트에서 바라 본 주변 풍경은 멀리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보이고, 

     해안가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새들은 바다 위를 천천히 날고 있었다.

 

     평화롭고 한가한 지중해의 해안이었다.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 올 뿐이다.

    카프리섬 정상에 도착해서 내려다 본 풍경은 실로 숨이 막힐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 아련한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神이 이 곳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시지 않을 까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이 나왔다. 저 까마득히 밑에는 푸르른  바닷물이 고요히 있고, 해안가에는

   보트가 장난감처럼 가지런히 있고, 기러기들은 아주 낮게 비행하고(워낙 높은 곳에서 보아서)

   고요한 정적같은 것이 흐르는 神의 공간 같았다. 동양에서 보자면 神仙의 세계.

   카프리 정상에서 달콤하고 쌉사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그 기분은 그리스 로마신화

   에서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나 암브로시아를 마시는 기분과 같을 것이다.

   아름답고 귀여운 꿈의 섬 CAPRI를 쾌속선을 타고 떠났다. 물론 아쉬움을 뒤로하고.

    쾌속선 지하1층에 탔는데 바깥에 푸른 물결을 지치고 빠르게 나가는 것을 계속보고

    있노라니 꼭 나 자신이  수상스키를 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또 물 속에서 바깥을 보는 기분이었다.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나폴리로 들어가는데

    나폴리는 美港으로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쏘렌토와 카프리 때문에 나폴리가 미항에 들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세계 3대 미항중 이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만 가면 될 듯 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세계 최고의 미항은 호주 시드니인 것 같다.

     로마로 귀환해서 로마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바티칸 박물관을 갔는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시스티나 성당 벽면에

   최후의 심판과 천장에 천지창조 등 미켈란젤로 그림들이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을 나오면 성 베드로 성당과 연결되는데, 성당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었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처형당한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성 베드로 성당보다 더 아름다운 실내 성당은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그 후 성 베드로 광장을 나오는데 중앙에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었다.   

     그 후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진실의 입을 보러 갔다. 실제로 정적을 살해하는 

     도구로 진실의 입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총독이나 재판관을 금으로 매수하여 상대편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반대편에 노예가 이미 도끼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반지를

     보고 정적의 손을 잘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런 것이 만연해서 진실의 입을

     버렸는데 하수구에 있는 것을 보고 후세 사람들이 하수구 뚜껑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로 인해 아직도 여전히 大인기를 이루어 줄을 한참

     선 이후에 볼 수 있었다. 그 시간 이후부터는 로마의 뜨겁고 날카로운 햇살을 피해

     벤츠를 타고 시원한 에어컨의 도움을 받아 로마를 관광했다.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다.  

     천정 돔은 구멍이 뚫려 있으나 비가 와도 대류현상에 의해 비가 신전 내부에는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스페인광장은 특히 활기가 넘치는 광장이었다. 오드리 헵번의 영향력은 사후에도 영원한 것

     같다.밑에서 28번 째 계단이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장소라고 한다.

     계단 앞에는 와인을 운반하던 낡은 배를 본떠 만든 분수가 있는데 물이 정말 시원했다.   

     다음은 트레비분수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삼거리분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지은 고대의

     수도 처녀의 샘의 수원이 기원이 되어서 만들어진 분수다. 분수 중앙은 바다의 신 넵튠의

 


     모습이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개를 던지면 연인을 만나고, 세 개를

     던지면 연인과 맺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열 다섯 개 정도의 동전을 던진 것 같다.

     좋은 일이 많이 많이 일어나도록. 그래서 황금색 동전을 던졌다.(10원짜리)(^^;)

    이탈리아의 유명한 젤라토와 함께 트레비의 분수를 보고 뜨거운 한 낮의 여유를 즐겼다.

    포로로마노 광장은   로마 개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티투스와 가장 화려한 셉티미우스

    세베레스 개선문 카이사르 신전,원로원 회당 등이 있었다.

    대전차 경기장은 약 25만 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F1 경기장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콜롯세움  앞에는 코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이 있다. 나중에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된다.

    나폴레옹이 콜롯세움에 오면서 문화적으로 강력한 로마에 굴욕을 느끼면서 말을 타고 들어

    왔다고 한다.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도 로마제국의

    우수한 문화를 알아보았으니, 안목이 높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콜롯세움은 8년 만에

    완공했고 약 5만 명이 관람이 가능했다고 한다. 글래디에이터 영화처럼 검투사와 맹수가

    맹수와 맹수가 대결을 하던 장소가 바로 이 콜롯세움이라고 한다.

    콜롯세움을 마지막으로 고대 로마제국의 여행을 모두 끝냈다.
 

     이번 여행은 러셀크로우 외모에 성우같은 목소리의 현지 가이드와 꾀꼬리 같은
 
     인솔 가이드의 안내와 좋은 사람들과의 편안하고 지적이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 옛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바라본

    지중해보다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바라 본 지중해는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옅게 깔린

    하얀 안개와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와 꿈꾸는 유람선이 바다 위에 떠 있고,깎아지르는 

    절벽은 바다를 막아 선 우람한 성채였다. 그 아래에는 발리를 옮겨 놓은 듯한 휴양지.

    따사로운 햇살과 더불어 정오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한 폭의 멋진 수채화였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소렌토의  환상적이고 시원한 풍광과 카프리의 섬의 절대적 고독과

    물의 도시 베네치아였다.

    VENI, VIDI, VICI!  소렌토,카프리,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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