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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영원한 처녀 융프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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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꿈꾸는 여행자는 오늘도 낯선 곳을 찾는 꿈을 꾼다.

 조물주가  만든 세상이 기묘하고도 환상적인 곳이 많다. 그 많은 세상을 맨발로 대지를

 밟으며  유람하고 싶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주는 대자연을 만나는 것이

 바로 여행이 아닌가 싶다.
 

  이번 여행지는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의 대립 속에서 중립을 취하고 사는 나라가 바로 스위스이다.

 지금은 냉전시대가 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이념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세상에 있어서 중용의 도란 무척 어려운 법이다.

 우리 나라같은 경우 좌파와 우파가 대립한다고 하면, 그 가운데서 중용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장수하는 비법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선거의 참여율도

 떨어지고 있는데, 갈수록 떨어질 것 같다. 중용의 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선거를 하러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거자체에 무관심하다고

 볼 수 있다.

 조직에서도 한쪽이 득세하면 다른 쪽은 피해를 보는데, 전세가 역전되면

 바로 피의(?) 숙청이 시작되는 것이 우리 나라 조직의 현실이다.

 같은 민족끼리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밥그릇 싸움하는 소국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슬프다.

 웅대한 기상으로 똘똘 뭉쳐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할 민족이

 내분으로 치닫는 동안 다른 나라는 앞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게 된다.

 과유불급처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고 하듯 중용의 도란 이와 같은 것이다.

 겁 많은 군대는 적을 쉽게 무찌를 수 있는 상황에서 싸우지 않는다.

 무모한 군대는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도 싸우려 한다.

 로마군단을 상대한 켈트족은 전자의 예라 할 수 있고,

 후자는 돈키호테가 적당할 듯 하다.

 양극단을 피하는 절제가 바로  중용이다.

  쉽게 말해 균형이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즐거움을 즐기면 호색한이 되고,반대로 금욕주의자가 된다면

  인생이 재미가 없어진다고 본다. 절제와 균형이 바로 중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장수의 비법은 바로 중용인데,그 중용이란 절제와 균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인생에서 중용의 도를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자연을 접하고,

  여행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색다른 곳에서 인생을 배우고,

  지친 가슴에 위로를 받아야 한다. 새로움과 신비로움, 자연의 치유력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스위스는 우리 나라 경상남북도 만한 작은 국가이다. 인구는 약 750 만 명 정도이다.

  1인당 GNP가 약 5만불에 달하는 경제대국이다. 언어는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로망슈어를 쓰는데, 64% 가량이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보면된다.
 

   우리 나라 음식에 비유하면 비빔밥처럼 복잡하다고 보면된다.

  그 옛날 카이사르에 의해 지배당하다 나중에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으로

  독립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험악한 자연을 아름답게 바꾸어 놓은 나라가 스위스이다.

  깨끗한 거리, 상쾌한 공기, 집집마다 장식되어 있는 꽃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밝게 해주는 나라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여행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스위스이다.
 

   한국의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용광로를 피해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탈리아 바로 위에 있는 나라라서, 얼마 전에 갔던 이탈리아가 매우 좋아

  이탈리아를 다녀온 뒤로 스위스에 한 달 반 만에 가게 되었다.
 

   스위스에 도착하자, 우리 일행을 반겨 주는지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의 열대야 때문인지  비 자체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는데, 스위스에 약 40년 가량을

  사신 할머니 셨다. 젊었을 때 미국유학 중에 같이 미국에 공부하러 온

  스위스 청년과 열애에 빠져 20 살에 바로 결혼을 하여서 지금까지

  스위스에 적을 두고 사신다고 한다. 매우 건강해 보여서 나이는 실제보다 어린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어쨌든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로 버스로 이동했다.

  원래 여행은 스위스 일주인줄 알았는데 보너스로 독일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이 원래 보너스에 약하다.(^^;) 국경을 라인 강 하나만 건너면 된다.

  가볍게 국경을  통과한 것이다.

  카이사르(시이저)가 로마제국의 경계로 삼았던 라인 강을 건너게 되었다.

  카이사르가 라인 강을 제국의 경계로 삼았는데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때

  엘베 강까지 진격하다가 게르만족의 게릴라 전법에 실패를 자주 하게 되어,

  2대 황제 티베리우스 때 조용히 라인 강으로 후퇴하게 되어 로마제국의 경계로 된 강이다. 

 

   로마가 낳은 유일한 천재인 카이사르는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지도자였다.

  BC 44년에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약 2천 50 년이

  흘렀다. 스위스에 비해 독일은 나무가 아주 울창하고 대낮에도  숲속은 어두워 보였다.

  나무가 초록보다는 짙은 갈색에 가까워 아주 어두워 보였다.

  그래서  도시가 블랙포레스트라고 불린다.

  로마군단이 블랙포레스트에 숨어서 수시로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하는

  게르만족에게 당해서 시야가 훤히 보이는 라인 강을 제국의 경계로 삼은

  카이사르 혜안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독일여자들은 아주 독하다고 보면 된다.

  좋게  말하면 생활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으나,

  필자가 보기엔 유럽 여러 인종 중에 게르만족 여자 만큼 독한 여자도 없다고 본다.

  첫 날 비가 오는 중에 여행의 피로를 풀면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양은 많지만 맛은 별로 없었다.

  호텔은 HOFGUT STERNEN이라는 곳인데 BEST WESTON이란  호텔체인인 것 같다.

  호텔 내부는 단아하고 깨끗해서 독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루이 16세 부인이 된 마리 앙트와네트가 묵었고,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숙박했던 바로

  그 호텔이다. 호텔이 지금은 두 개의 건물인데, 원래 하나였는데, 하인들이 쓰는 건물을

  개조해서 지금은 두 개의 건물을 사용하는데, 필자는 운이 좋아서 원래있던 건물에 숙박

  하게 되었다.  호텔이 바깥에서 보면 동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예쁜 건물이었다.

  유서 깊은 호텔에서, 독일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시차가  있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 산책을 하는데, 간 밤에 비가 내려 대지는 촉촉하게

  물기에 젖어 있었다. 흐르는 시냇물은 나무의 진액이 스며들어서 인지 갈색이었다.

  칡즙과 같은 색이라고 보면 된다.호텔 건너편엔 이쪽 산등성이와 저쪽 산등성이를

  연결한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굉장히 큰 다리였다. 낯선 곳에서 눈을 떠 새들의

  지저귐과 냇물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데 그 기분은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의 설레임,

  신선함, 직장에 처음 출근했을 때의 희망과 같은 그런 삶에 대한 자신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전나무 숲으로 둘러 싸인 호텔 주변을 산보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뷔페식이었다. 전날 저녁식사와는 비교가 안되게 질적으로도 우수하고 맛은 아주

  좋았다.

 

   호텔을 나와 티티세라고 하는 호수 유람선을 타러 갔다. 날씨는 비가 와서

  청명했으나,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다.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는데, 날씨는 쌀쌀하고

  풍경자체가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에 온 착각이 들었다. 리틀 밀포드 사운드라는

  생각이 나만의 착각일까? 물색은 역시 약간 갈색이었다. 독일의 평화로운 호수유람

  이었다. 길이는 약 2KM 정도라고 한다. 이 도시는 전나무가 많은데, 전나무로 뻐꾸기

  시계를 만드는 것 같다. 시계내부 정밀한 부분은 스위스가 만들고, 외부는 여기서

  만든다고 한다. 큰 것부터 시작해서 조그마한 것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시계추가

  전나무 열매인데 솔방울처럼 생겼다. 우리 나라 뻐꾸기 시계는 프라스틱으로 만들

  어서 가볍다고 보면 이 곳의 뻐꾸기 시계추는 그야말로 쇠 덩어리여서 대단히

  무겁다고 보면된다. 티티세호수 주변은 참 깨끗하고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바캉스가 아니면 아주 조용한 시골일 것이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푸야라는 회전초밥집에서 일식으로 식사를 하고,라인 강을 넘어서

  스위스로 왔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오자 분위기가 약간 딱딱한 곳에서 부드러운

  곳으로 온 것 같았다. 독일은 처음 가 보았지만, 약간 경직되고 딱딱해서 사람이

  살기엔 스위스가 더 나은 것 같다. 스위스로 넘어오자 우리 나라 시골 풍경처럼

  온화하고 초록의 바다와 농가와 푸른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있어서 마음이 푸근했다.

  쥬르작이라는 도시에 노천온천에 갔는데, 온천이라고 하기엔 미지근하고 수영장보다는

  약간 따뜻한 물이라고 보면 될 듯한데,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 나라 온천에 온다면

  뜨겁다고 다 나올 것 같다. 어쨌든 수영장같은 온천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스위스

  여행을 만끽했다. 스위스 중앙부근에 있는 루체른으로 이동을 했다.
 

    루체른 이란 도시  중앙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가로지르는 카펠교가 있다.

  물위에는 백조가 유유히 노닐고 있었다. 카펠교는 지붕이 있는 나무 다리인데

  기둥 상단에 악마와 천사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약간 흉칙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리 나라 남대문처럼   몇년 전에 완전히 전소되어서 지금은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평온하고 한가로운  도시를 산책하면서 옛날 성을 학교로 사용하는데,

  성을 올라가는 계단 부근에서 보는 풍경은 중세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빈사의 사자상을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엄청나게 큰 사자상  이었다.

  스위스가 예전에 못살아서 농사를 짓다가 외국용병으로 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바티칸에서 경비를 서는 사람들이 바로 스위스 용병이라고 한다.

  바위 절벽 중간에 사자상을 조각해 놓았는데, 우리 나라도 암벽 중간에 불상을

  입체로 조각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빈사의 사자상은 그야말로 아주

  정밀하게 조각을 해 놓아서 진짜 지친, 죽어가는 사자의 슬픈 모습 그 자체였다.

  루이 16세를 경호하면서 끝까지 사수한 용병이 바로 스위스 용병이라고 한다.

  충성심에선 스위스를 따라갈 용병이 있을까? 우리 나라도 돈을 많이 벌어 충성

  스러운 스위스 용병을 독도에 배치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다. ^^;

  빈사의 사자상 앞에는 호수가 있어서 수 많은 동전들이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금빛 동전(10원 짜리) 몇 개를 호수에 던졌다.

  호수 사이라는 의미의 인터라켄으로 이동하여 스위스에서 첫 날을 보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알프스는 하나의 산 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산들이

  모인 산맥이라고 보면된다. 그 중에서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는 산들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세 개 뿐이다. 나머지는 이름뒤에 호른이라는 이름이 붙어

  그 뒤를 따를 뿐이다. 쉴트호른 마테호른 등이 그 나마 이름있는 봉오리다.

  그 중에서도 최고를 선택하라면 단연 융프라우이다. 아이거란 남자가 있고

  중간에 묀히라는 수도사가 있어서 영원히 처녀로 남은 융프라우라고 한다.

  아이거 3970m 묀히 4107m 융프라우 4158m 연이은 세 개의 봉우리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함과 스위스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융프라우 가는 호수에 툰과 브리엔츠 호수가 양쪽으로 있고, 그 사이 도시가

  바로 인터라켄이다. 호수에 물빛은 중국 구채구처럼 청옥빛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석회석 물이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라우터 브루넨을 거쳐  그린델발트까지 갔다가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융프라우요흐를 갔던 것 같다.

  가는 길에 저 멀리 초원이 펼져져  있고,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서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집들은 예쁜 꽃들로 장식되어 있어 스위스 국민만큼 꽃을 사랑하는 국민도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북벽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아이거를 이야기 한다.

  아이거 허리를 관통하는 터널이 나온다. 터널길이가 7.4km이고, 300 명의 노동자가

  14년에 걸쳐 뚫었다고 한다. 얼음 덮인 산을 뚫었다고 하는데 정말 자연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자들이다. 어쨌든 그 많은 노동자들의 노고에 힘입어 우리 같은

  여행객들은 암벽을 등반하지 않고도 기차를 타고  손쉽게 알프스 산맥의 정수인

  융프라우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운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터널 중간에 아이거반트역에서 내려 유리창을 통해

  아이거 빙하를 구경했는데 구름이 멋지게 끼어 있어 마치 바다 위에 뜬 독도처럼

  보였다. 독도가 아이거 봉에 그 모습을 아름답게 내 보이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엔 아이스미어역인데, 이 역에서 관측창을 통해서 본 곳은 바로 백두산

  천지가 보였다. 봉우리 사이로 천지같은 곳에 구름이 넘실대는 모습이 마치 백두산

  천지 같았다. 긴 터널을 지나 드디어 융프라우요흐,유럽의 지붕이란 곳에 도착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고 귀가 약간 멍했다. 춥기도 했지만.....

  3571m 에 있는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야외 테라스로 나와서 보는 알프스의 풍광은

  그야말로 말로할 수 없는 영화 그 자체였다. 묀히가 4107m 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악인들이 그 모습에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쉽게 범접하지 못하게 세찬 폭풍우가 불어서 몸이 가벼운 사람은 날아갈

  정도였다. 다행히(?) 몸무게가 있어서 날아가지 않았지만,아이거와 묀히의

  아름다운 광경을 동영상에 담았다. 평생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멋진 모습이었다.

  메모리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많은 양을  담지 못했지만

  정말 멋지고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전망대가 스핑크스처럼 생겨서

  스핑크스 전망대라 불리는 것 같다. 야외 테라스는 철망으로 되어 있어서

  밑이 다 보이는데 밑을 보면 너무 무서워서 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스핑크스 전망대에선 주로 묀히를 본다고 보면된다. 묀히는 그야말로 대장관이었다.

  아이거(남자)와 융프라우(여자)사이에서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서 영원한 처녀로 만들어 놓은 묀히의 우직함과 위용은 숨이 멎을

  정도였다. 스위스의 자랑이자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융프라우를 만년동안

  조용히 지켜보는 수도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용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 후 얼음 복도를 지나가는 데 미끄럽고 숨이 막힐 지경인데

  이 곳이 얼음궁전이라고 하는 곳이다.

  얼음궁전에는 독수리, 에스키모인, 곰, 펭귄 등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 후에 영원한 처녀 융프라우를 보러 갔다. 플라테 테라스로 나가자,

  영원한 처녀는 우리를 부끄러워 했는지 거센 폭풍우를 일으켜서 흐릿하게만

  모습을 보여 주었다. 플라테 테라스는 무척 미끄럽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묀히는 남성적이라면 융프라우는 만년의 전설을 간직한 단아한 모습에

  아름다움을 조용히 보여 주는 여성스러운 모습이다.

  세찬 바람에 날아갈 듯도 했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끝까지 가서 줄을 잡고

  사진 한 컷! 일행 중 반 수 이상이 춥고, 미끄러워서 플라테 테라스에서

  잠깐 얼굴만 내밀고, 정상에는 가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같이 간 숀코너리 처럼 잘 생긴 분은 필자와 같이 정상에 서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융프라우 그대는! 지구 온난화라는 복병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처녀성을 지켜 그 진면목을 전 세계인들에게 영원히 보여 다오!'

 

   아이거, 묀히와 융프라우의 감동을 뒤로하고, 초록의 대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뱅겐알프 하이킹을 시작했다. 주변에 초원에는 예쁜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고 소들이 종을 울리며 풀을 뜯고 있어서 전원의 풍경인데, 그 위에 산들은

  백색의 옷을 입고 춥지도 않는지 우리를 보고 방긋 웃고 있었다. 시원한 공기로

  우리의 폐를 깨끗이 청소하면서 노르딕 워킹이 아닌(^^;) 하이킹을 하면서

  가볍게 내려왔다. 멋지고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오늘 여행으로서

  스위스 여행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후 스위스 수도인 베른으로 이동했다. 베른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중세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가지다. 예전에 공동묘지였던 곳을 장미공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장미공원에서 내려다 보면 중세의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아레 강이 구시가지를

  감싸듯이 흐르고 있었다. 베른을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도시를

  상징하는 동물을 정하기 위해 사냥을 하는데, 제일 먼저 잡힌 동물을 도시의 상징으로

  하기로 했는데 곰이 잡혀서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도시외곽을 방어하는

  데 곰을 키웠다고 한다. 그 후에 그뤼에르라는 도시로 갔다. 스위스 3대 치즈로는

  에멘탈치즈, 그뤼에르치즈, 아펜첼러치즈라고 하는데, 구멍난 치즈가 바로 에멘탈

  치즈인데, 가장 칼슘이 많고 염분이 가장 적은 치즈라고 한다.

  어쨌든 그뤼에르는 치즈로 유명하다. 그뤼에르 성을 보았는데, 동화같은 마을을

  지나서 언덕에 있었다. 그뤼에르 성에서 내려다 보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시골마을 같은 성이었다. 그 후 네슬레 본사가 있는 브베이라는 도시로

  갔는데, 레만호수 앞에 챨리 채플린의 동상이 사람처럼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한 모습이었다.

  챨리 채플린은 영국출신 미국 코미디언인데 극우파에 의해

  사회주의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추방되어 죽을 때까지 스위스에서 살다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 빈민 수용소에 있을 때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도,

     나는 자신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배우라고 믿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한 생각으로는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그래도 내가 그렇게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 나를 구했다.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나는 고달픈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일찌감치 삶을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해가 지는 레먼 호수에 포크가 박혀 있는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옆 몽트뢰로 이동했다. 몽트뢰는 프레디 머큐리동상이 있었다.

  몽트뢰에서 유로텔 리비에라 호텔에서 묵었다. 호텔이 편안하고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방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융프라우를 다 본 후에 비가 와서

  천만다행이다. 레만호수 가에 있는 시옹성을 보았는데 멀리서 보면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체르마트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체르마트는 마테호른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스위스 초코렛에서 보면 상표에

  있는 산이 마테호른이다. 비가와서 그런지 마테호른은  안개로 인해 그 진면목을

  볼 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묀히와 융프라우의 감동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어 괜찮았다. 마테호른은 4478m로 상당히 높은 봉오리다.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여름에 여행을 왔는데 이탈리아어권인 루가노란 도시로

   가는 길에 계곡을 넘어야 하는데, 아침에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에 눈이 대량으로

   쌓이고 계속 내리는 겨울이었다. 계곡의 정상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한여름에 한 겨울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보다 4개월 먼저 겨울을 맛보았다.

   여름에 겨울을 만끽하는 재미란 여행이 아니고서는 느껴 볼 수 없는 멋진 추억이다.

   점차 내려오면서 봄이 되고 루가노로 도착하자 지중해성 기후의 온화함으로 인해

   마음도 휴양지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렸다. 이탈리아권에 들어서인지 괜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루가노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식당을 갔다. 식당은

   베네치아가 생각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파스타를 먹으면서 이탈리아의

   향수를 느꼈다. 돌아올 때는 밤이 되어서 루가노 호수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호수를 조금 더 가면 이탈리아라고 한다. 스위스는 조금 날씨가 쌀쌀한 편인데,

   루가노는 날씨가 온화해서 정말 좋았다. 역시 따뜻한 남쪽나라가 좋은 것 같다.

   따뜻한 이탈리아권에서 편안한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벨린쪼나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카스텔그란데 성을 관람했는데, 웅장한

   성이라는 의미이다. 그 후 마이언펠트라는 도시로 이동하여 하이디의 집을 보러

   갔다. 알프스소녀 하이디는 스위스 여류작가 요한나 슈피리가 쓴 소설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화영화로 만들어 또 알려지게 된다. 하이디의 집가는

   입구에 하이디의 샘이 있었다. 하이디의 샘에 물이 흐르는 소리에 한적한 전원의

   오후를 느끼게 해주었다. 청명한 하늘과 조각 구름들이 떠있는 전원의 마을에서

   하이디 집을 방문했다. 하이디 집에는 작가의 사진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으로

   나온 하이디 책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책도 전시되어 있었다.

   요한나 슈피리가 하이디집이 있는 곳에서 너무나 귀여운 소녀가 즐겁게 놀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소설속의 이야기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지금은 살아 숨쉬는 알프스가 있는 꿈의 세계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하이디집에서 관광을 마치고 걸어오는 풍경은 그야말로 전원 풍경을 제대로 보여

   주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이 양을 이끌고 귀가하는 목동이 된 듯했다. 초록 들판에

   한 줄기 길게 늘어진 길을 마냥 걸으면서 주변 산들이 말을 건네는 듯하고,

   하늘은 약간의 구름과 더불어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파아란 하늘이

   우리 자신이 하이디이자 목동이었다. 이제 스위스 여행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샤프하우젠이라는 도시로 이동하여 라인폭포를 관광했다.

   배를 타고 라인 폭포가 흐르는 강을 건너는데, 높이는 높지 않으나(약23m) 길이가

   꽤 길다. 그 웅장함은 높이가 높다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환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배를 타고 건너서 전망대 같은 곳에 가니, 물이 튀고 소리가 커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물의 잔치였고, 흰 포말의 아름다운 향연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았다. 가늘고 긴 일반 폭포라 예상했는데,

   높이가 높지 않지만 폭이 긴 폭포였고, 중간에 바위가 있어 더욱 소리가

   우렁차고 멋지게 흐르는 흰색의 아름다운 소리의 축제였다.

   아마도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게르마니아인들의 포호가 아닐까?

 

    아름다운 스위스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신께 감사 드린다.

   여행을 재미있게 해준 일행들과 친절하고 세세하게 안내해준 가이드 분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거와 묀히, 융프라우의 환상적인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답고

   멋진 추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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