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 하루가 남은 시점에 차가운 날씨를 헤치고 남국나라를 향해 인천으로 떠났다.
출국장 로비에 백색 K7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는 솜털처럼 편안하고 안락했다.
창 밖에 깃털처럼 구름들이 저 멀리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나하 공항에 내리자 따뜻한 남국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포근한 날씨와 산들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반겨 주었다.
처음에 간 곳은 식명원(시키나엔)이라는 곳이었다.
류큐왕국의 별장으로 사용하면서 외국 귀빈들의 접대에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연못과 정원으로 되어 있는데 운치있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연못 중앙에 섬을 만들어 육각형 정자(모정)를 만들어 반원형의 돌 다리로 연결하여 조용한 별장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문에서 조금 들어가면 맑은 물이 흘러 나오는 육덕천이 있고, 우둔[어전]이라는 붉은 기와 지붕의 목조건물의
별장이 있었다. 오솔길은 한적하고 평화스러웠다.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옛날 왕들의 휴양을 왔을 것이다. 대체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보다는 대만과 가깝다.
오키나와의 엣 왕국인 류쿠왕국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연상시켰다.
류큐는 조선과 왜와 중국 푸져우, 광둥, 베이징, 필리핀, 베트남(안남), 태국(샴), 인도네시아 등과 해상교역을
통해 풍부한 경제력을 쌓았다.
류큐왕국에선 대량의 말과 소를 사육했는데, 명나라가 몽골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전선으로 군수 물자를 운반하는 말을 필요로 했으며, 화약의 원료인 유황을 필요로 해서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명나라의 책봉, 조공정책 및 해금정책이 류큐왕국에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중국 상품은 강한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우리 나라의 핸드폰, 반도체,LCD,LED 처럼)
류큐왕국의 황금시대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처럼 쇼신왕이 옥좌에 군림했던 50 여 년 간이다.
중국의 궁정문화를 도입하여 류큐의 왕조생활을 정비하고, 왕국체제를 확립하고 국왕의 권위를
강화했다고 한다.
나중에 철포로 무장한 사쓰마군에 정복당하여 지배 받다가, 메이지유신 때 일본에 강제 병합당한다.
류큐왕국의 역사의 교훈은 막강한 경제력이 있어도 군사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국가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에 간 속은 오키나와 월드인데, 빨간 색의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오키나와 월드는 테마파크인데 먼전 종유석 동굴인 옥천동을 구경갔다.
길이가 약 5KM인데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약 890M 정도이다.
입구에는 오키나와의 상징인 사자 모양의 시사[사자]라는 동물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석회석 동굴은 처음 발굴 당시엔 하얀 색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공기와 접촉하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회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옥천동은 끝부분이 하얀 색이어서 아직도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종유석 1CM가 자라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3년에 1MM자란다는 이야기다.
중간중간에 석회석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커튼 모양의 종유석도 있었다.
옥류동 탐방 후 식사를 갔는데, 음식은 먹을 만 했다. 류큐왕국 역사 박물관에 들어가서 보니, 류큐인들은 사탕수수로 옷감을 만들어
입은 것 같았다. 검은 색의 시사는 중국의 사자舞에서 나오는 사자와 모양이 비슷했다.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류큐왕국의 민가와 류큐왕국 공방, 토산품 가게들이 들어서서 축제의 장처럼 느껴졌다.
건물 지붕위에는 시사라는 동물이 암수 두 마리가 있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수컷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암컷이라고 한다.
수컷이 돈을 벌고 암컷이 돈이 나가지 않게 다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액운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감자처럼 생긴 튀김을 사 먹었는데 달고 맛있었다.
유리잔을 만드는 공방에 가 보았는데, 500도 이상 되는 뜨거운 가마에 쇠꼬챙이로 유리를 붙잡아 모양을 성형해서 다듬어 유리잔을
만들고 있었다. 그 후 초록색의 사탕수수 주스를 먹어 보았는데, 어렸을 때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열대과일 들을
이것 저것 둘러보는 가운데, 아열대 왕국인 류큐왕국이 중국과 조선과 동남아와 왜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풍부한 부와
문화를 흡수하여 독자적인 왕국을 만든 류큐왕국의 시간이 흘러 가고 있었다.
다음은 류큐의 교역선을 보러 갔는데, 진공선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그림을 통해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크기는 꽤 큰 편인데, 약간 조잡한 형태였다. 류큐왕국의 에이사광장에서 민속공연을 보았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 후 뱀쇼를 보러 갔는데, 아열대 지역이라서 뱀들이 겨울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무수히 많은 뱀들이 있었고,
코브라의 공격성을 보여주는 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독 이빨로 물풍선을 터트렸다. 뱀이 많아서 뱀술도 만들고,
뱀 가죽으로 악기나 지갑 등도 만든다고 한다.
시사라는 동물은 우리 나라 해태와 비슷하다고 보면되고,
뱀은 의미가 우리 나라 돼지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오키나와인들은 뱀 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3월에서 11월 경 까지 해수욕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열대 지역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대체로 느긋하다.
오키나와는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 160 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류큐열도에 있는 약 48개 정도의 섬에 사람이 거주한다고 한다.
오키나와현에 134만 명이 산다고 하는데, 오키나와시에 약 110만 명이 산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장수촌으로 유명하고, 사탕수수가 많이나고, 뱀도 많고, 지금은 파인애플도 많다고 한다.
고구마도 오키나와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한다. 비행지역도 지상에서 300m 까지가 민간의 영역이고,
300m에서 600m 까지 일본 자위대영역이고, 600m 에서 900m 까지가 미 공군영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하 공항에 착륙시 비행기가 급격하게 하강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한다.
그 후 한국인 위령탑을 갔는데, 둥근 무덤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려 거대한 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키나와 전쟁 최후의 격전지에서 많은 사람이(약 20만 명 이상) 죽었다고 하는데, 한국인도 징용으로
끌려와서 약 1만 5 천 명에서 2 만 명 가량이 전사했다고 한다. 오키나와인은 약 1/4이 궤멸되었다고 한다.
어쩄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위령탑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먼 이국땅에서
아무 이유없이 일본인들에 의해서 끌려와서 애처롭게 죽어간 우리 동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위령탑 앞 광장에는 대한민국이 있는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뒤쪽으로는 태평양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시절의 치열했던 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양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광장 중앙에 연못같은 조형물을 만들어 그 중심에 갈대기 모양의 오키나와의
평화의 불을 만들어 놓았는데, 불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평화를 희구하는 불꽃이리라.
저녁은 우리 나라 막걸리 주막 같은 곳에서 먹었는데, 무대에서 오키나와 전통 악기인 사미센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음식도 신통치 않고, 가수들도 시원찮아서 별 감흥은 없었다.
호텔로비에는 진공선이라는 모형 배가 멋지게 전시되어 있었다. 옛적 류큐왕국의 번영을 자랑하듯이.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그 즐거움을 찾아서! (0) | 2010.02.22 |
---|---|
류큐 왕국을 찾아서!(2) (0) | 2010.01.04 |
추구하는 價値를 바꾸면 人生도 바뀐다. (0) | 2009.12.29 |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긴다. (0) | 2009.10.08 |
신비한 비경을 찾아서! (0) | 2009.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