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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람세스2세와 네페르타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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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2세와 네페르타리를 찾아서

어렸을 때부터 피라미드,스핑크스, 투탕카멘 등 신비로운 대상인 이집트로 떠나는 날 저녁
마음은 몹시 흥분되었다.
일상적인 업무의 과도함으로 인해 무척 피곤한 상태였으나, 침착하게 준비물을 챙기고 금요일밤
겨울의 매서운 바람 에서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랍에미리트항공(EK)이 중국의 군사훈련으로
해안가에 착륙 당한 후 4시간 가량 억류되어 예정된 출발시간인 새벽 0시 보다 4시간 지연되어 새벽
4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무료한 시간에 공항면세점은 1,2군데를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의자에서 지친 몸을 누이고 한참 잠들어 있는데, 누가 깨워서 비행기를 시간에 맞춰 탈 수 있었다.
5시간 후 두바이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알렉산더 대왕을 얼마 전에 읽어서인지 그 이름만으로도 친근감이 가는 도시였다. 알렉산더는 우리
나라 광개토대왕 같은 땅을 넓힌 왕이지만, 요절했다는 것이 아쉬움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생각보다는
멋진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조용하고 이집트인들이 지중해 해변가에서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이슬람국가라서 술을 금하므로, 나름대로 운치가 떨어질 것 같았다.
지중해는 호주나 동남아처럼 깨끗하지는 않고 그냥 시퍼런 바닷물이었다. 예전엔 세계최대의
장서가 있었으나 기독교도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 시절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 시절
에 많은 책을 기증했다고 한다. 물론 책이라는 것이 파피루스라고 보면 된다. 종교란 참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시설은 컴퓨터와 열람실, 깨끗한 장서, 아름다운 외관이었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앞에는 알렉산더 두상이 있었고, 해시계가 조형물로 되어있었다. 많은 이집트
학생들이 도서관 앞에 모여 있었고, 외국인을 보면 말을 걸곤 하였다.
그 후, 카이트 베이 요새를 둘러 보았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조잡한 물건을 팔고 있었고, 일본관광객도
드문 드문 보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새로 만들 때 기증을 많이 해서 아까 도서관에 나라국기와
이름이 영어와 아랍어로 적혀 있었는데, 이런 것이 국력이 아닌가 보인다. 물론 우리 나라는
예전엔 외교관계가 없어서인지 이름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이동하여 오아시스호텔에서 머물렀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된다. 인생의 거친 사막에서 황량한 사막과 뜨거운 열기와 타는 듯한 목마름과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오아시스처럼 호텔이 여행객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오아시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호텔이 조용하고 마음과 몸을 추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시차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해 보니 완전 미로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오전 11시에 일어나는 것이 보통
이라고 한다. 상당히 게으르다고 한다. 수에즈운하로 1년에 수 조원을 벌어들이니 별로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이집트는 국토가 아시아, 아프리카 두 대륙에 걸쳐 있는 특이한 나라이다.
다른 나라를 보면 우리 나라 민족이 대단한 것 같다. 이집트는 이런 큰 국토를 가지고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데, 동방의 우리민족은 조그마한 국토로도 세계 강국의 반열에 들어있다니...
여행은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개척하는 힘을 주는 인생의 보약이라고 생각 된다.

다음 날은 이집트 여행의 백미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러 갔다.
4500여 년 전의 사막에서 이루어진 대토목 공사는 시간을 훌쩍 넘어 우주적인 신비를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생전의 파라오는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이집트 백성을 지켜 주고,
파라오 또한 영원의 안식을 찾아야만 했다.
피라미드는 사막 중앙에 있는 줄 알았는데, 사막 끝 절벽 부분에 만들어져 있었다.
피라미드는 10 만 명이 2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1년 중에 약 3개월간 공사를 했는데 우기에 나일강의 물이 불어나 수위가 높아지면
수 백 킬로 떨어진 아스완에서 거대한 돌을 채취하여 나일강을 이용 뗏목으로 운반하여
공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로 보면 농한기에 공사를 했다고 보면 된다.. 공사는 노예가
아니라 일반백성이 수당을 받고, 건설했다고 한다.
쿠프왕, 카프라,멘카우라 피라미드가 3형제처럼 사이좋게 서 있었다. 쿠프왕은 피리미드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딸을 매춘부로 활용했다고 하고, 딸은 자기의 피라미드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웅장하고 거대하지만, 어렸을 때 생각한 것에 비하면 약간 실망스런 느낌이었다.

파라오는 현세는 잠깐 거쳐 가는 것으로 생각 사후세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스핑크스를 보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스핑크스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코는 프랑스군이 대포를 쏘아서 부서져 버렸다고 한다.
이집트에선 코가 부활하는 통로로 생각했다고 한다. 턱수염도 있었는데, 영국인들이 스핑크스를
통째로 가져갈 수 없자 턱수염만 떼어 가서 지금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얄미운 영국인들이고, 불쌍한 이집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핑크스는 수 천 년 동안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는지........
그 후 피라미드 삼형제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서 낙타를 탔는데, 낙타는 말보다 높이가 훨씬
높아서 처음엔 무섭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면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이집트에서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를 보는 재미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다.
파라오와 태양을 찬양하던 장대한 문명은 이제 사라지고, 그 시절을 오래 전에 잊은 잃어버린
이집트의 정수를 보았다. 카이로의 발상지인 올드 카이로를 간단히 둘러보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갔다. 엄청난 유물이 있을 듯 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다 외국에서 가져가 버리고,
돌덩이만 있다고 보면 된다. 투탕카멘의 묘만 도굴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의 황금이 30KG이 된다고 하니, 실권을 가진 파라오는 엄청난 황금과
보물이 있었을 것이다. 박물관에 엄청나게 전시물이 많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고 왕국 시대의 조상인 라호테프와 네페르트의 조상이었다. 눈이 초롱초롱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 좌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처음에 사람이 살아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로 11시간 정도를 기차를 타고 떠났다. 침대칸이라고 하지만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룩소르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세면을 하고 멤논의 거상이 나란히 서 있는 벌판에서
사진을 찍고, 버스에 올랐다. 왕들의 묘소로 만들어진 일종의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인 왕가의 계곡으로 가게 되었는데, 왠 광산인가 할 정도로 계곡은 단순한
흙더미로 이루어진 산 같은데 그 요소요소에 무덤이 있었다. 투탕카멘왕
람세스1세, 2세,3세 등의 묘가 많았으나, 그 중에 개방된 것은 몇 개되지 않았다.
대체로 통로가 좁고 중요한 유물은 이미 없어지고, 벽화만 남아있었다.

하셉수트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인 합셉슈트 장제전이 있었는데, 따가운 햇살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사진 보다는 웅장함이 떨어졌다. 그 후 나일강 동쪽의 카르낙 신전을 관광했는데, 규모도
엄청나고 그 많은 열주나 오벨리스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대규모 공사가 시행되었을 것이다.
카르낙 신전의 대열주의 둘레는 엄청났다. 열주 위쪽으로 천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모두
기독교도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카르낙 아몬 대신전 입구에 세워진 람세스2세상의
다리부분에 아름다운 네페르타리의 전신상이 보였다. 그 옆 룩소르 신전은 조금 규모가 작고
정교함이 떨어지나 카드낙 신전의 부속신전이라고 한다.



룩소르 일정을 마무리하고, 아스완으로 이동하는데 피로가 몰려와 버스에서 잠을 청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이동하여 람세스2세가 3300년 전에 건설한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을 관광했다. 원래는 아스완하이댐을 만들게 되어 수몰위기에 처한 것을 60M 끌어올려
다시 재조립한 것이라고 한다. 람세스2세의 힘이 현재에 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람세스2세의 좌상이 4개 서 있는 거대한 석상이 있었고, 내부도 부조가 칼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소신전이 있는데 네페르타리 신전이라고 보면 된다. 람세스2세의 왕비에
대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지원과 유네스코 유적이전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아스완하이댐을 보았는데, 이 댐 건설로 인해 이집트는 이 댐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전 이집트가 1년을 사용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문화의 일부를 포기하고, 현재의 안락을 추구한
경우인데, 잘된 것인지 아쉬운 것인지 분간은 어려웠다.

그 후 배를 타고 섬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아에시 라고 부르는 둥근 모양의 빵이 이집트인의
일상 음식이다. 식사 후 고대 이집트 토목기술의 귀중한 연구자료인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숭배의 비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오벨리스크 자체가 한 개의 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미완성오벨리스크는 바위를 채석해서 만드는 중에 바위에 금이 가서
오벨리스크로서 가치를 잃어 버려 둔 것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장기간의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카이로로 가는 기차여행이었다. 도착 후 카이로에서
바하레야 사막으로 가는 날이었다. 짚프차로 사막을 가는 4시간 30분간의 여행은 흥겨운 이집트
노래와 함께 지루함이 상당히 감소되었다. 이곳에서 차는 보통 10년 20년 이상 된 것이라고
하니 정말 자동차를 오래 쓰는 것 같다. 바람에 의해 버섯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의 사막을 구경하고,
검은 사막, 화이트 사막을 보았는데, 멀리서 보면 눈이 와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면
석고 같았다. 크리스탈 마운틴이라고 하는 곳을 보았는데, 크리스탈이 꽤 많이 남아있었는데,
전문가가 아니라도 품질이 조잡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한 가운데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닭고기와, 고구마, 감자 등을 불에 구워 먹고, 침낭에서
하루 밤을 잤는데, 정말 사막의 밤 날씨는 추웠다. 땅속의 찬 기운이 올라와 뼈 속가지 추위가
스며 들었다. 다음날 플라워 스톤이라는 특이한 돌이 있는 지역(사막)을 둘러보았다.
카이로로 귀환하여 이집트 나일강 투어가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뷰페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밸리댄스를 보는 것인데 생각보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나일강의 야경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고, 저녁이라 날씨가 약간 쌀쌀했다. 호텔로 돌아온 후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이어서 같이 온 일행과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각자 나름대로 위치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로 향했다. 두바이는 현대 및 미래의 도시였다.
홍콩과 싱가폴을 능가하는 도시였고, 규모는 엄청났다. 홍콩은 중국의 관문, 싱가폴은 동남아의
관문, 두바이는 중동의 관문이라고 한다는데, 두바이는 그 이상이었다. 예전에 택시인 아브라에
탑승하여 두바이의 야경을 구경하고, 돛대 모양의 세계최고의 호텔인 버즈 알 아랍호텔을 멀리서
보고 모하메드 궁전 외관을 가볍게 둘러보고 건물내 실내스키장도 보았다. 전체적으로 두바이는
상상초월 그 자체였다. 온 도시가 공사중이었다. 7개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 중 두바이
는 2번 째 도시이다. 따라서 두바이는 2009년이나 2010년에 와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씨월드나 팜랜드 등 엄청난 것이 많은데 저녁시간이고, 관광시간이 얼마남지 않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천을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힘들었지만, 신비로운 이집트와 발전하는 두바이를 본 이번 여행이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호주의 아름다움과 북경의 이화원, 구채구의 호수, 화산미굴, 황산, 람세스2세 등 많은 것들을
2005년에 본 것 같다.
2006년에 대만, 러시아, 뉴질랜드, 곤명, 계림, 소주, 프랑스 등을 볼 계획이나,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길 신께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