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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은 신비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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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 자신을 크게 성장시키는 힘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세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학교이며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예정된 미래를 탈출해야 한다. 또 자기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대하거나 인생을 충실히

하고자 한다면 시간이 나면 떠나라.

젊었을 때의 여행과 나이가 들어서 간 여행은 그 느낌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여행을 자주 한 사람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더 큰 성공을 위해 조그만 성공을

포기하라. 신비로운 세상과 만나면 신선한 놀라움과 더불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여행을 통해 삶을 살찌우고, 삶의 영역 확대를 통한 더 큰 성공을 위해 나아가자.

세계를 가슴에 안으려면 떠나라.

월요일 오후 먼 낯선 이국 땅을 찾아간다는 설레임으로 잠을 못 이루고,

거의 12시가 되어서 잠들게 되어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꼼꼼히

여행 갈 목록을 점검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고 5시 50분 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시아최고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은 너무 자주와서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마카오 항공(NX000)을 타고, 국내항공기보다는 질적으로 떨어지고, 서비스도 약간 떨어지지만,

그런 대로 괜찮았다. 스튜어디스는 대체로 친절했다. 마카오에 도착했는데, 출입국 심사대는

약간 딱딱한 분위기였다. 역시 친절함은 동남아에선 태국을 따라올 수 없나 보다.

현지가이드는 몇 년 전 홍콩을 들러서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 바로 그 가이드였다. 반가움에

인사를 했다. 예전에 일본에 두 번째 갔을 때도 가이드가 역시 같았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질긴 것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마카오는 몇 년 전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놀랍도록

발전되어 있었다. 예전엔 어둡고 음침하고 죽어있는 도시라고 한다면, 지금은 생기있고, 밝은

도시라고 하면 적절할 듯 하다. 괄목상대라고 보면 될 듯하다.

먼저 점심을 먹었는데, 양이 무척 많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다.

중국 특별행정구인 마카오와 중국 광동성의 국경선(?)을 가 보았고, 몇 년 사이에 멋진

건물이 웅장하고 깨끗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후 관음당 이라는 절을 가 보았는데, 예전에

목숨 수(앞에서 보았을 때) 모양이고, 뒤에서 보면 복 복자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죽고

그 형체만 남아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분재도 거스를 수 없었나 보다.

관음당은 예전엔 폐허 같고, 귀신이 나올 것 같았는데, 지금은 꽤 번화하고

약간 밝아지고 호화로와 진 것 같았다. 마카오 박물관은 그런 대로 볼만했다.

1층에 진시황릉을 지키는 병사가 인상적이었다. 옥상에 몬테 요새라는 곳에

옛날 대포가 여러 대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발사되는지 궁금했다. 그 후 성바울 성당이라고,

마카오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성당을 다시 한번 보니 세월의 풍랑에도 변함없이 굳건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에 위대한 예술작품은 영원하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예전 방문 시에는 주마간산식으로 보았으나(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오늘은 약간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 성 바울성당의 뒷 쪽으로 2층까지 올라가서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나도 광장과 물결무늬의 바닥까지 두루 보게 되었다. 포르투갈 장인이

만들었다는 물결무늬는 성 바울 성당과 더불어 몇 백년을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 후 뜻하지 않게, 예정에 없던 카지노를 가게 되었다.

예전의 복수를 하려고 갔으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추가로 환전하여 베팅하였으나, 역시 안되었다. 역시 도박은 '절제의 미학'이 아닌가

하는 뜻 깊은 교훈을 얻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절제'라는 단어를 명심하며 살아가야 겠다. 마카오와 두 번 째 만남은 모든 것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모습에 놀람 그 자체였다. 공항으로 오는 길에 우아하면서도 거대한 관음상이

마카오의 번영을 상징하듯이 바다에 우뚝 서 있었다.

마카오와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다시 항공기를 타고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앙코르 와트를 향했다. 앙코르 와트는 몇 년 전에 오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번에

오게 된 것이다. 캄보디아 씨엠립은 첫날 여정의 흥분과 기대와 설레임을 다독여 편안하게

해주는 첫 밤이었다.

둘 째 날에는 너무 일찍 일어났다. 캄보디아와 우리 나라는 시차가 2시간이나 난다.

(한국 오전 8시이면 캄보디아 오전 6시) 오늘 씨엠립에서 아침식사는 입맛에 잘 맞았다.

국내선비행기(프로펠러형 비행기)를 타고 남쪽 프놈펜(수도)으로 갔다. 오전에 로얄 팰리스

라는 궁전과 실버 파고다란 절을 둘러보는데, 대체로 태국에 비해 떨어졌다. 옛날 크메르왕조의

위용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샴 제국(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

건물 곳곳에 종이나무라는 식물이 있었는데, 한 나무에 여섯 가지 정도의 다른 색갈의 꽃이

피고 자세히 살펴 보면 꽃이 아니고 꽃이 잎이고, 그 잎 중간에 다시 꽃이 피는 희한한 구조였다.

팬 바나나라는 나무와 나뭇잎에 여러 사람들이 자기 소원을 적어 놓은 잎이 길고 큰 식물도

있었다. 중식은 한식을 먹었고, 중식 후 두리안, 망고스틴, 리치 등의 열대과일을 맛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에 톤레삽 호수에 가서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새우, 가재

등을 숯불에 구워 먹고 삼겹살과 김치로 식사를 했다. 지는 저녁노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 였다. 메콩강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프놈펜의 밤은 깊어 갔다.

3일째는 프놈펜에서 늦게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처음 버스로 독립기념탑을 지나면서 보고,

투온슬랭 학살교도소를 방문했다. 폴 포트란 독재자가 정부관료나 기타 일반 서민들을 아무

죄 없이 잔학하게 수 만 명(수 십만 명)을 고문하여 죽인 교도소였다. 그 전엔 학교로 사용했다고

한다. 폴 포트는 나중에 심장마비로 죽고 그 부인은 정신병자가 되어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한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한 것 같다. 인간을 잔인하게 살육한 사람들은 어린 병사라고 한다.

그 후 국립 박물관을 가게 되었는데, 로얄 팰리스 근처에 있었다. 예전 앙코르시대 이전 유적부터

앙코르시대 유적, 후 앙코르시대 유적 등 다양하게 있었는데, 주로 힌두교와 불교가 다양하게

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주로 나오는 신이 비슈누신이라고 하는 태양신 과 파괴를 주관

하는 시바신, 뱀신이라 일컬어지는 나가신이다. 시바신은 링가라는 남성생식기의 모습으로 나타

나기도 하고, 요니라는 여성생식기의 모습과 세트로 화신한다고 한다. 나가는 계단 끝이나, 다리

위로 조각이 되어 있는데, 머리가 3개, 5개, 7개, 9개, 11개를 가진 뱀의 형상이다.

중국에서 나오는 용의 개념으로 파악하면 될 듯하다.

그 후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진 킬링필드를 가 보았는데, 위령 탑 주변에

웅덩이가 많이 있었다. 그 웅덩이에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썩어서 해골이 되어 있었던 것을

위령 탑으로 옮겨 보관 한다고 한다. 뼈나, 치아, 옷 가지들이 오랜 세월에도 웅덩이 군데군데

보여서 죽은 자들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캄보디아가 예전에 앙코르제국이었는데, 샴 제국에

의해 박살나고, 최근엔 폴 포트의 잔혹한 살육에 의해 피폐되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전엔 우리 나라, 태국, 베트남보다 더 잘 살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이 끝난 시점에 폴 포트는

베트남 남쪽 메콩강 삼각주를, 식량을 획득하기 위해 공격하여 멸망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내전에 의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나라를 보며 이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프놈펜(캄보디아 수도)의 중앙시장에 가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 60년대 말 70년대 초

시장과 같았다. 삶의 활기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고,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은 기본이었다.

다양한 삶과 인간들의 군상을 볼 수 있었고, 아직도 전쟁의 흔적으로 고생하는 상이용사와

지뢰로 팔 다리를 잃은 어린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서민들은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시장에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중산층인 것 같았다. 옥수수를 먹게 되었는데,

크기는 작지만 맛은 달콤했다. 그 후 태국에서 운영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씨엠립(북쪽)으로 왔는데, 역시 태국비행기는 편안했다.

씨엠립에서 압살라 전통 민속 쇼를 보며 저녁식사를 하는데, 공연은 태국에 비해

한 참 떨어진다고 보였다.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호텔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4일 째는 캄보디아 최대의 하일 라이트인 앙코르 와트를 보게 되는 날이었다.

아침식사후 앙코르 톰 남문에 도착해서 자야 바르만 7세의 얼굴과 앙코르 제국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다리를 보았다. 남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이욘사원이 나오는데, 바이욘사원

내부에는 그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벽에다 부조로 모두 ?綏舅? 해 두었다. 닭싸움이나

돼지싸움 등도 있었고, 수상 전투, 지상 전투도가 그려져 있었고, 중국인(머리를 틀고 턱수염을

기른 모습)과 크메르인(귀가 길다) 등이 아주 세밀하게 나타나 있었다.

다음은 복원공사가 한창인 바푸온 사원을 가게 되었는데, 가운데 통로는 왕과 귀족 만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다리를 건너가면은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왕족과 같은

느낌을 느끼면서 다리를 걸어갔다. 앙코르 톰이라는 것은 일종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 성내

인구가 약 100 만 명이었다고 한다. 물론 노예는 제외한 인구라고 하니, 옛날 인구로는 어마 어마

한 숫자이다. 왕궁 터와 군인들을 사열했다는 코끼리 테라스로 가 보았는데, 양 옆에 코끼리들이

긴 코로 연꽃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옛 앙코르 제국의 위용과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툼레이더(안젤리나 졸리)의 촬영지인 타프롬을 가게 되었는데, 시엥이라는

나무에 의해 사원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이 기이했다. 자연의 파괴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팜 나무는 뱀처럼 휘감고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힘든 앙코르 톰 관광을 마치고,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호텔에서 1 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했다. 대망의 앙코르 와트,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건축물을 보러 가는

마음은 수줍은 처녀의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11세기 후기 앙코르 왕조는 자주 앙코르를 침범하는 참파 왕국(베트남)을 정벌하고

굳건한 제국을 건설한다. 3 만 명의 장인들이 30년에 걸쳐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앙코르 톰 이후에 지어졌다고 한다. 입구는 다리 끝에

7개의 머리를 가진 뱀신 나가의 형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앙코르 와트 중앙에는

다섯 개의 탑이 있었다. 동서남북 벽면에는 힌두교신화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760미터에 달하게

전개된다. 주제는 권선징악과 왕권의 신격화라 보면된다. 앙코르 와트 외곽에는 해자라고 하는

큰 호수를 사방으로 파 놓아 적의 침략을 대비 했다고 하는데, 호수 폭이 180 여 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 호수 건너편 정글엔 맹수를 풀어 놓아서 철옹성을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샴의 용맹한

전사들에 의해 한 순간에 앙코르 제국은 붕괴 되었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나지만, 특히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현대기술로서도

결코 쉽지 않을 만큼, 아주 놀라우리만큼 정교하고 아주 옛날 지반이 약한

대지에 건설한 앙코르 와트가 수 백년이 지나도 튼튼하게 서 있는 것이 세 개의 기초 돌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실제로 기초 돌을 비스듬히 쌓아 올려 빈 공간에 앙코르 와트를 세웠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 중앙에 1층과 2층을 구경하고 마지막 3층은

거의 70도의 경사가 진 계단(폭이 아주 좁음)을 암벽 등반하듯이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올 때도 역시 70도의 계단(위에서 내려다 보면 낭떠러지 수준)을 내려오는데,

혹시 가시는 분이 있다면 3층은 올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너무 힘들고 내려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2명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3층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60미터 정도의 작은

언덕을 올라 프놈 바켕을 올라 낙조를 보고 내려왔는데, 여기도 계단이 폭이 아주 좁고,

가파르다. 그래서 별로 추천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하루종일 더위와 피곤에 지친 몸을

전신 마사지로 피로를 풀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 했다.

5일 째는 약간 여유스러운 일정이라 생각했는데, 상당히 고된 강행군이었다.

오전에 동양 최대의 자연호수인 톤레삽 호수의 수상촌을 관람했는데,

유래는 베트남의 보트피플에서 라고 한다. 난민을 받아 주지 않자 배 위에 집을 짓고,

무리를 이루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데, 학교 교회 병원 매점 엔진충전소 등등 일반 도시처럼

모든 것이 있었다. 물은 황토색인데, 수심은 2-3미터 정도라고 한다. 그 후 앙코르 톰 서쪽에

거대한 아주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름이 웨스트 바레이라고 한다. 그 호수

중앙에 직경이 150미터 정도되는 섬에 사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배를 타고 가서 상륙하여

관람하고 돌아가는 데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 주었다. 호수가 거의 바다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 호수를 보면서 진시황같은 왕이 수 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완공했을 것

이라 생각되는데, 앙코르 톰이나 앙코르 와트, 주변 해자들을 건설했는데, 강력한 왕권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 국력을 소모하여,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 일정은 캄보디아 민속촌인데, 태국의 미니시암 정도로 보면 된다. 그 가운데서 캄보디아

소수민족인 크롱족의 약혼자 선택이란 공연이 재미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오는데, 친절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현지 한국가이드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힘들고 조금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행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의 방식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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